제례문화는 집안 전통도 중요하지만
요즘 시대에 맞게 다듬어 나간다면
모두가 진심으로 공감하는 문화될것

▲ 김종국 서울교통공사 서비스안전센터장

절기로 볼 때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霜降)도 지났으니 이제 곧 겨울이다. 우리 집안은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제물을 준비, 음력 시월 초에 시제(時祭)를 모시고 있다. 사실 시제라는 것이 햅쌀로 빚은 떡과 햇과일 등으로 제물을 장만해 조상의 산소를 찾아뵙는 일이니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형제들이 함께 모여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산소를 두루 찾는 일이 그리 만만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온 가족이 함께 고향을 찾아 산소를 돌봐주시는 친인척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후손의 도리를 다할 수 있으니 조상에 대한 숭모와 더불어 집안의 화합까지 도모하는 참으로 아름다운 전통이라 하겠다.

예부터 제례는 가가예문이라 하여 집안에 따라 절차와 방법이 다소 다르기도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차츰 간소화되고 편해진 느낌이다. 우리 집안도 제사를 대물림하면서 조금씩 변해왔는데 그 중 대표적인 사례가 축문을 시대에 맞게 간단한 한글축문으로 고친 것이라 하겠다. 예를 들자면 ‘오늘은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몇 해가 되는 날로 온 가족이 모여 생전의 인자하신 모습을 되새기며 평소 좋아하시던 청주와 여러 음식을 정성껏 준비하여 추모의 정을 나누고자 합니다’라는 형식의 축문인데 그때그때 마음에서 우러나는 표현을 자유롭게 가감해 쓸 수 있으니 오히려 진정성이 더하는 느낌이다. ‘유세차…’로 시작하는 한문 축문은 나름 깊은 뜻을 가지고 있지만 한자음을 한글로 토를 달아 읽은들 참례자 전원이 그 뜻을 알고 새기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일반적 통념을 고려한 까닭이다.

잔을 올릴 때에도 초헌 아헌 종헌의 절차에 따르지만 보다 융통성을 부여하기로 했다. 대학 입학이나 졸업, 군 입대와 제대, 취업이나 승진 등등의 신분 변동 사항을 고하고 잔을 올리는 것인데 당사자들도 한마디씩 다짐이나 희망사항을 직접 말씀드리는 것이다. 제사를 지내면서 마치 살아계신 분에게 집안일을 보고하듯이 그간의 변동사항과 더불어 앞으로의 계획까지 함께 아뢰니 더욱 겸허한 마음으로 참례자 모두가 집안일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동시에 함께 다짐하는 의미도 되고 조상님들께서도 무언의 자문과 격려를 보내주시는 듯하다. 제사를 마치기 전에는 몸이 불편하셔서 제사에 참석을 못하시는 어머님께 제사상을 물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철상을 하게 되는데 이 또한 어머님도 함께 하셨다는 의미이다. 간혹 외삼촌 내외나 고모님들께서도 제사를 참관하시곤 하는데 처음에는 무언가 어색하고 기존의 격식에 맞지 않는듯하다는 말씀도 하셨지만 지금은 그 취지를 이해해주시니 다행스런 마음이다.

우리 한국인들의 관혼상제 절차와 방식은 매우 까다롭고 번거로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제례문화와 집안의 전통도 중요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현실에 맞게 간편하고 이해하기 쉽게 고쳐나간다면 그것 또한 문화의 한 과정이 아닐까 싶다. 중요한 것은 도리와 예의이며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정성이니만큼 이를 잘 지켜나가면서 참례자들과 공감하는 제사가 되도록 다듬어나가고자 한다. 이번 시제에서는 가족들과 함께 예와 정성에 모자람이 없는 범위 내에서 허례허식이 없도록 절차와 방식 그리고 비용도 함께 절감하는 방안에 대해 ‘산상가족회의’를 가져볼 생각이다. 아름답게 물들어 가는 단풍을 바라보며 이번 시제에서는 조상님들의 산소를 찾아뵙고 집안의 무슨 사연을 어떻게 고할지 조상님들과의 대화 목록을 미리 챙겨 본다.

김종국 서울교통공사 서비스안전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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