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선임기자

우~우우우~~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1982년 10월31일, 필자는 아직 얼굴에 여드름이 남아 있던 대학 1학년때부터 이 노래를 불렀다. ‘잊혀진 계절’보다 ‘시월의 마지막 밤’으로 더 알려진 이 노래를, 2018년 10월31일을 하루 남겨놓고 30일 아침부터 또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36년 동안 애국가 보다 더 자주 불려졌던 이 노래는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10월의 전설’이다.

‘잊혀진 계절’의 노랫말에는 ‘남자’ ‘여자’ ‘연인’ ‘사랑’ 같은 낱말이 하나도 없다. 통속적인 표현 대신 ‘뜻 모를 이야기’ ‘진실’ ‘쓸쓸한 표정’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 ‘이룰 수 없는 꿈’ 등이 주를 이룬다. 그대의 진실은 무엇이고, 나의 꿈은 진정 이룰 수 없는 ‘전설’로만 남을까.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가을하늘에 맑고 깨끗한 피아노 선율이 깔리면 문득 ‘슬프고 아름다운’ 전설을 대면하는 느낌이다.

▲ 가을의 상징 감.

계절은 전설을 남긴다. 애잔한 추억에 이룰 수 없는 꿈이 화석처럼 찍히면 ‘전설’이 된다. 36년 동안 국민들에게 DNA로 굳혀진 이 노래는 ‘잊혀진’ 노래가 아닌, 10월31일만 되면 부활하는 국민 가슴 속 민족정서의 씨앗이다. 36년 동안 전 국민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합창처럼 이 노래를 불렀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득해진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4월에 아로새겨졌다면 시월의 마지막 밤은 고엽(枯葉)같은 여운을 드리운다.

‘시월의 마지막 밤’은 미국에서 열리는 핼러윈 데이(Halloween Day)이기도 하다. 켈트족은 고대 유럽지역에 살았던 민족으로, 일년이 열 달로 이뤄진 달력을 사용했다. 켈트인들은 마지막 달인 10월31일 농작물을 거둬들여 죽음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결실의 계절 10월은 죽음의 신으로부터 받는 축복이자 평화에 대한 기도였다. 죽은자들이 내세(來世)로 가는 이날 밤, 지하세계의 문이 열리면서 악마와 마녀, 유령들이 우르르 올라와 영혼을 괴롭히고 심술을 부렸다. 사람들은 큰 모닥불을 피워 영혼들의 저승길을 밝히고 한편으로는 기괴한 모습으로 분장해 악령들을 헷갈리게 했다. 시월의 마지막날 밤은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이별의 밤’인 모양이다.

겨울로 넘어가는 가을의 끝에 ‘이룰 수 없는 꿈’이 매년 이렇게 잘 익은 홍시처럼, 전설처럼 매달려 있다. 이재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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