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간월재에 올라야 한다. 33만㎡에 이르는 억새밭이 기다리고 있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과 어우러진 은빛 억새가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거친 저음을 쏟아낸다. 해발 900m의 높이에 자리한 탁트인 평원, 그 평원을 뒤덮은 억새밭은 그야말로 황홀경이다. ‘영남알프스’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다. 자연이 울산사람들에게 준 특별한 선물임에 틀림없다.

간월산(1069m)과 신불산(1159m) 사이에 자리한 간월재는 접근하는 산행길이 다양하지만 가장 가까운 등산로인 웰컴센터에서 오르면 천천히 걸어도 3시간이면 다다른다. 산악인들은 물론, 지역주민들에게도 인기 있는 등산길이다. 억새가 한창인 10월 한달간은 알록달록 등산객들로 만원이다. 수년전부터 울주군이 ‘울주오디세이’라는 산상음악회도 열고 있다. 영남알프스 산악관광자원화의 마중물격인 프로그램이다. 웰컴센터 주변에선 국제산악영화제도 매년 열리고 있다. 그 때문인지 찾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난다.

그만큼 편의시설도 필요해졌다. 울주군은 2009년에 지어진 대피소의 증축공사를 추진하고 있다. 지금의 대피소는 지하 1층 지상 1층에 화장실과 대피공간을 갖추고 있다. 대피공간은 좁고 난방도 안된다. 화장실은 자연발효식이라서 냄새가 많이 나고 파리 등 벌레도 끓는다. 자연친화적 재료를 사용한다고 목재로 지었는데 이음부분이 부식되고 물이 새는 등 보수하기도 어려운 지경이다. 울주군이 말하는 증축이 필요한 이유다.

울주군에 따르면 대피소는 2층으로 확장된다. 대피공간을 넓히고 수세식 화장실을 들인다. 백패킹족을 위해 데크 설치도 고려하고 있다. 산속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공간이니만큼 편의시설은 필요하다. 그 공간이 쾌적해서 나쁠 건 없지만 크고 화려할 필요는 없다. 대피소가 능선 뒤편 처진 공간에 놓여져 있기는 하지만 저렇게 거창해야 하는가라는 의구심이 생긴다. 그런데 1층을 더 올리고 목재가 아닌 석재를 사용해서 개축을 한다니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재료를 사용하거나 능선의 곡선미를 헤칠만큼 우뚝 솟아오를까 걱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는 목적은 자연과의 동화를 통한 정서적 치유다. ‘해발 900m의 높이에 자리한 탁트인 평원, 가을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억새바다’를 훼손하는 시설이 돼서는 안 된다. 대피소는 비상시에 대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대피소라는 이름에 걸맞은 소박한 시설이면 충분하다. 지금보다 오히려 적은 규모로 더 효과적인 대피소를 만들 수는 없을까. 공연히 편리하게 해준답시고 간월재가 갖고 있는 특유의 정서를 헤칠까 걱정돼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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