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太和江百里 : (1)프롤로그-개관(槪觀)

▲ 울산 남구 신정동에서 바라본 태화강 전경. 삼산들과 태화강, 무룡산 등이 아득하게 보인다.(출처: 태화강 백서)

울산의 근원 태화강
백운산 탑골샘서 발원한 물줄기
7천년전 반구대에는 바위그림을
조선시대 대곡천에 9곡문화 일궈

중생대에 생성된 강
용암 흘러내려 기반암 자리잡고
흙·생물등 퇴적돼 충적층 만들어
비옥한 충적평야 중심 마을 형성

명리학에 根深枝茂 源遠流長(근심지무 원원유장)이라는 말이 있다. ‘뿌리깊은 나무는 가지가 무성하고, 샘이 깊은 물은 멀리 흐른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근원(根源)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태화강(太和江)은 울산의 근원(根源)이다. 태화강은 백운산에 뿌리(根)를 박고 탑골에 샘(源)을 둔 울산의 태(胎)가 움튼 곳이다.

▲ 1861년에 제작된 대동여지도. 울산과 언양 일대의 지도를 살펴보면 산맥과 태화강이 잘 나타나 있다.(출처: 역주 울산지리지)

조선 영조 때 신경준이 정리한 산경표(山經表)는 우리나라의 산과 강을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라는 하나의 원리로 압축해 놓았다. ‘산은 물을 가르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 강은 산을 만들고, 산은 다시 강을 만들어 6500만년의 유장한 흐름을 이어온 태화강, 울산의 강산(江山)은 태화강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본보는 지난 1991년 1월부터 2년 남짓한 기간에 기획물 ‘백화강 백리’를 연재했고. 10년 후 2002년에 ‘신 태화강 백리’라는 이름으로 두번째 연재를 했다. ‘태화강 백리’는 태화강을 따라 형성된 마을을 직접 찾아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노래와 풍속과 역사를 채취하는 인문 안내서 역할을 했다.

이번에 새로 기획한 연재물 ‘지오그래픽 태화강’은 태화강에 대한 접근법을, 인문을 가미한 지질·지리 쪽으로 확 바꿨다. 태화강의 유로(流路)와 지질(地質)과 지리(地理)에 의해 마을이 형성된 과정, 문명의 지정학적인 역학(力學), 그리고 그런 지질·지리에 의해 촉발된 구곡(九谷) 문화 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 하늘에서 바라본 태화강. 언제 촬영됐는지 알 수 없지만 인가가 드문드문 있는 것으로 보아 일제강점기 또는 이전에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출처: 태화강 백서)

태화강은 위에서 아래로, 꾸준히, 쉼 없이 나아가 첩첩준령(疊疊峻嶺)의 바위틈새를 비집고, 산너울 아득한 산허리를 감고 또 감아 마침내 하늘이 환히 열리고 산들이 멀찌감치 물러난 벌판에 제모습을 드러낸다.

강을 지배하는 자가 천하를 지배한다고 했다. 울산이 ‘4000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 민족 숙원의 부귀를 마련한’(1962년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치사문) 것도 태화강 때문이었다.

태화강은 백운산, 고헌산, 신불산, 간월산, 연화산, 국수봉, 문수산, 무룡산의 물을 한데 모아 곳곳에 굽이치는 용틀임을 일으키고 곳곳에 배산임수의 비옥한 들판을 만들어 냈다. 7000년전에는 반구대에 전무후무한 바위그림을 남겨놓았고, 대곡천에는 풍류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9곡(九谷)문화를 일궈냈다.

태화강(太和江) 발원지는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 백운산 탑골샘이다(<태화강 백서> 2014년). 강은 탑골샘에서 대곡천으로 흘러 대곡댐, 사연댐을 거쳐 울산의 도심을 관류한 뒤 울산만으로 유입된다. 길이 47.54㎞에 유역면적은 643.96㎢다. 10리를 4㎞로 환산(1리=0.392727㎞)하면 태화강의 길이는 100리를 조금 넘는다. 태화강의 두번째 발원지로는 가지산 쌀바위를 꼽는다. 다만 쌀바위는 그야말로 ‘상징적인’ 발원지여서 대부분 백운산 탑골샘을 성지(聖地)로 여긴다.

▲ 태화강 본류와 작괘천이 만나는 울산 울주군 신화리 일대 전경. 신화리는 울산의 역사가 시작된 특별한 지역이다.(출처: 대곡박물관)

태화강은 1억3500만년 전에서 6500만년 전 사이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이상현, 2014년, 우리문화재연구원).

보통 좁은의미의 ‘지질시대’는 지구의 가장 오래된 암석이 형성된 시점(약 38억년전)부터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1만년 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이를 세분하면 크게 선캄브리아대(38억년전~5억7000만년전, 지질시대의 6분의 5를 차지함), 고생대(5억7000만년전~2억3000만년전), 중생대(2억3000만년전~5600만년전, 공룡시대), 신생대(6500만년전~1만년전, 포유류의 시대)로 나눌 수 있다.

태화강은 다시 말하면 중생대에 만들어진 강이다. 이 시기에는 화산이 곳곳에서 터지고 용암이 흘러내려 하천의 밑바닥(기반암: 하천의 밑바닥 암석)을 형성하고 그 위로 미세한 흙입자와 생물의 뼈 같은 것들이 퇴적되면서 충적층을 만든다. 울주군 언양읍 언양분지, 언양읍 반천들, 범서면 입암들, 중구 태화동 태화들 같은 비옥한 충적들판은 태화강이 이리 저리 유로를 바꾸면서 사행(蛇行: 뱀처럼 몸을 구불구불하게 나아가는 모양) 또는 파행(跛行)하면서 만들어낸 작품들이다.

▲ 울산 남산에서 바라본 태화강 전경(1970년). 태화교와 학성공원이 보인다.(출처: 태화강 백서)

태화강이 빚어낸 충적평야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형성했고 그 마을 사람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역사를 만들어 냈다. 반천과 작괘천이 합수(合水)하는 언양읍 신화리, 고헌산과 가지산의 물줄기들이 합수하는 거지화촌, 문수산 물이 모여드는 굴아화촌 등은 태화강이 일으킨 울산의 역사의 거점들이다.

마을을 다른 말로 ‘동네’라고 하는데, 한자인 ‘洞(동)’자와 ‘內(내)’가 합쳐진 말이다(표준국어대사전). 마을 동(洞)자는 함께 물을 먹는다는 뜻이다.

태화강 물을 함께 먹으면서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는 대표적인 동네가 언양읍 천전리(川前里)와 반천리(盤泉里), 입암리(立巖里), 구영리(九英里), 태화동(太和洞) 등이다. 이들 동네는 높지 않은 야산 산록에 위치해 있으면서 거대한 충적평야를 앞마당에 두고 있다. 풍수(風水)로 치면 태화강을 끼고 있는 배산임수의 명당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요즘 말로 하면 ‘강(江)세권’이다.

‘강호(江湖)’란 단어는 중국의 9만리 장강(長江)의 물줄기가 흘러들어 동정호(洞庭湖)를 만들어낸데서 나온 말이다. 그러고 보면 태화강의 수계에는 대곡댐(湖)과 사연댐, 대암댐 등 3개나 되는 호수가 있다. 우리나라 최대 산업단지인 울산은 가히 ‘강호의 고수’들이 모여드는 요새임에 틀림없다. 이재명 선임기자 jmlee@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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