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검증없는 ‘셀프 비핵화’ 일관에도

정부, 저자세로 국제사회 후견인 자처

우리 안보 지탱하는 한·미동맹 ‘삐걱’

▲ 김주홍 울산대학교 교수·국제관계학
현재 남북한 관계는 한·미 동맹과 남북교류협력이라는 두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 두가지 요소를 연결하고 있는 것이 북핵문제, 즉 북한 비핵화이다. 따라서 비핵화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남북교류협력 문제도 풀릴 수 없다고 보아야 하며, 한·미 동맹은 비핵화 문제를 풀 수 있는 가장 결정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한·미 동맹이 삐걱거리고 있다는 소리가 여러 곳에서 들리고 있다. 비핵화 협상에 있어 마치 미국이 북한의 자발적 비핵화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 인해 비핵화가 진전되지 못하고, 그에 따라 남북 경제협력을 비롯한 관계개선이 진척되지 못한다는 논리가 정부 내에 팽배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9·19 평양선언과 군사협력조치 합의 이후 한·미 간 불협화음이 더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가장 중요한 비핵화 문제에 있어서 북한이 지금까지 보여준 것은 사찰도 검증도 없는 ‘셀프비핵화’였다. 풍계리 핵시험장 폭파나 동창리 미사일시험장 해체 등의 조치는 북한 비핵화의 본질적 부분과 관련이 없다. 북한 비핵화의 본질적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비핵화 대상 목록 작성 및 제출, 사찰검증단 입북 수용, 현장검증 수검, 관련시설·장비 해제 및 반출 등이 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내가 할 수 있는 셀프비핵화 이상은 못하겠으니, 이쯤에서 대북 제재 및 압박을 풀고 경제지원을 하라”고 한국과 미국, 그리고 국제사회에 강요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 대한 요구는 노골적이다. 한국의 대기업 총수들을 북한에 불러들여 ‘냉면-목구멍’ 막말을 하는가 하면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미국의 눈치를 너무 본다며 비난한다. ‘우리민족끼리’라는 해묵은 논리로 한국의 대통령과 정부를 압박해대고, 한국의 통일부 장관과 국회의원에게 거침없이 막말을 내뱉는다.

이렇게 된 데에는 우리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 그동안 너무 저자세로 북한을 상대해 준 것이 그 직접적 원인일 것이다. 안되는 것은 ‘안된다’고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것만은 아니다. 우리 정부가 스스로의 자존감을 너무 쉽게 포기하고 국제적 수준의 동향 파악과 여론 형성에 실패한 책임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대해 비핵화와 관련한 그 어떤 주장도 못하면서도 소위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우며 북·미 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지면 이를 중재하는 모양새로, 평양 회담 이후에는 북한에 대한 제재 해제와 지원을 위한 후견인의 모양새로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뭔가 하는 듯이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 유럽에 가서는 실제로 민망한 대접을 자초하기까지 했다. 미국과 유럽 사이에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커다란 입장차이가 존재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대북제재 해제 및 지원을 요청했다가 오히려 유엔 안보리의 결의안 원칙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이킬 수 없는’(CVID) 비핵화라는 것을 확인당하는 망신을 당한 것이다.

이는 그동안 대통령을 잘못 보필한 청와대 외교안보 라인은 물론 외교부장관, 통일부장관, 그리고 주미 대사, 주불 대사 등의 현지 공관장들과 해외여론 분석 및 조성에 실패한 부서장들까지 마땅히 모두 문책했었어야 할 정도로 커다란 일대사건이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한·미 동맹은 우리의 자주권인 ‘동맹권’의 실현이며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탱하는 ‘사활적 이익’에 해당한다. 남북한문제가 한·미 동맹의 수준을 넘어가는 것은 절대로 안될 일이다. 더욱이 정부가 국민들의 자존심을 무시한 채 국제적 여론과 판단수준을 오판하고 그에 근거해 국가의 정책을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가려 한다면 그것은 더더욱 국민들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국민들이 바라보고 있다. 김주홍 울산대학교 교수·국제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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