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落葉)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紙幣)./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 시(市)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瀑布) 속으로 사라지고···포플라 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호을로 황량(荒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쪽에/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김광균 ‘추일서정’(1940년 7월 발표)

입동(立冬)이 지났지만 아직 가을은 황금빛이다. 겨울이 서걱거리면서 언 땅을 일으켜 세우면 비로소 우리는 그것을 立冬(입동)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 망명정부의 지폐같은 낙엽이 도로에 뒹굴고, 오후를 비추는 일광(日光)이 폭포처럼 도로에 쏟아지고 있는 이 때 우리는 추일(秋日)의 한 가운데 있음을 온 몸으로 느낀다.

황금빛은 화려하면서도 절망적이다. 불교에서는 해가 지기 직전에 잠깐 하늘이 밝아진다는 ‘회광반조(回光返照)’라는 용어를 쓴다. 회광반조는 숨막히게 화려하지만 궁극에는 소리도, 색깔도, 시간도 없는 적멸의 미궁 속에 침잠하게 된다. 계절을 시간의 마디라고 표현했다면 끝없이 돌아오는 계절의 마지막 마디는 가을이다.

김광균의 ‘추일서정’ 첫 문장은 11월초의 풍경을 선문답처럼 풀어낸다. 폴란드는 스라브족과 게르만족 사이에서 수백년 동안 시달려 온 민족이었다. 나라가 없어졌다가 생겨나길 반복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또 비운의 망명생활을 해야 했다. 폴란드의 숙명을 목격했던 김광균은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라는 화두를 바위같이 던져버린다.

지난 2008년 2월 중국 스촨성 지진 때 한국인 유학생 5명이 지진 구역에 갇혔다. 며칠 밤낮을 걸어 간신히 피신에 성공했는데, 그 배경에는 역시 돈이 있었다. 유학생들은 추위에 맞서는 죽음의 행군길에서 밤마다 고액 지폐를 조금씩 태웠다. 땔감보다는 못했지만 5명의 생명을 건지는데는 훌륭한 역할을 했다.(한계레 2010.2.24)

경상일보 앞 행길에는 요즘 샛노란 은행잎이 우수수 눈처럼 떨어지고 있다. 은행(銀行)의 지폐든,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든, 은행(銀杏)의 낙엽이든 이 가을에는 체온과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할 뿐. 황금빛 가을의 종말이 암흑이 아니라 ‘회광(回光)’임을 입동을 지나면서 다시금 생각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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