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애란 울산과학대학교 학술정보운영팀장

‘울산들꽃학습원’에는 다양한 야생화와 수목이 자라고 있다. 지친 육체와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아 즐겨 찾는 곳이다. 입구는 꽃댕강나무가 담장 대신 울타리를 치고 있었다. 이 꽃이 내뿜는 그윽한 향기는 비 맞는 것을 못 느낄 정도로 매혹적이다. 빗자루처럼 곧게 서 있는 메타세쿼이아나무 가지마저 휠 정도로 비가 굵어졌다. 멀지 않은 곳에 원두막이 보였다. 소나기를 피해갈 수 있는 좋은 장소로 여겨졌다. 나의 어린 시절, 원두막은 수박과 참외를 심은 밭머리에 있었다. 비가 오거나 한더위를 피하여 쉬는 장소였으며, 과일을 사러 오는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기도 했다.

울산들꽃학습원에는 원두막이 여러 개 있다. 막 들어선 곳은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원두막이다. 우산을 접고 천장을 올려다 보니 옛날의 원두막 정취는 찾아볼 수 없었다. 천장 지붕을 받치고 있는 육각형의 쇠 구조물은 자연친화적인 생태환경과 거리감이 느껴졌다. 누런 녹이 슬어 있었고, 쇠 구조물 위의 나무 합판은 물에 젖어 얼룩이 베여 있었다. 모서리마다 쳐진 거미줄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농작물원 근처에 있는 원두막도 사정은 비슷했다. 키 큰 사람이 올라서면 썩은 나무 합판이 머리에 닿을 듯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네 기둥을 따라 서까래 합판에는 하얀 곰팡이와 파란 곰팡이가 붙어 있어 작은 바람에도 곰팡이가 떨어질 듯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서까래 쪽만 주로 부패가 되었다. 입구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원두막은 차마 보기조차 민망스러웠다. 천장의 얼룩진 합판은 모두가 들떠 있었고, 종이처럼 찢어져 보기 흉했다.

결국 원두막에 앉아 잠시 쉬는 것을 포기했다. 울산들꽃학습원을 방문한 시민들은 원두막에 앉아 보지도 못하고 나처럼 돌아간 것일까? 시민들은 불편한 시설을 보고도 왜 수수방관(袖手傍觀)만 한 것인가? 도대체 이 시설물 관리는 누가 한단 말인가? 무거워진 마음에 발걸음을 내딛기가 힘들었다. 비가 멈췄다. 원두막 때문에 보지 않고 건너뛰었던 농작물원으로 향했다.

잘 가꾸어 놓은 농작물에 기분을 한결 나아졌다. 밭에는 아침 해처럼 붉게 차오르는 감, 하얀 솜뭉치를 보듬고 있는 목화, 구수한 들깨를 머금은 깻잎, 고구마, 작두콩 등이 빼곡하다. ‘김치에 빠지지 않는 생강, 아, 잎이 이렇게 생겼었구나’ ‘어머, 종이 접착에 사용되는 닥풀나무네’ 혼잣말로 한없이 흥얼거렸다. 아무 생각 없이 먹었던 잎과 뿌리채소 그리고 열매를 보니 참 정겨웠다. 마침 30대 한 청년과 60대 중년 남성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르신, 이 잎은 식용인가요” “깻잎이잖아, 향도 좋고 몸에도 좋고…” “와! 역시 향이 시장에서 사 온 것보다 3배나 강한데요. 역시 청정 지역이라선지 이곳에서 재배한 식물은 달라 보여요” “그럼, 비닐하우스 전깃불 받고 자란 식물과 자연 바람, 햇살 받고 자란 것이 같을 수 있나” “깻잎 식물에도 꽃이 폈네요” “그 꽃이 진 곳을 보게. 들깨가 맺혀 있다네”

청년은 도시에서 자랐는지 흔한 식물조차 모르는 눈치였다. 아마도 밥상에 올라오는 깻잎 식물이 꽃을 피운 곳에서 들깨가 나온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 같았다. 그들은 목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었다. 중년 남성은 상세하게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설명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세대를 뛰어넘는 훌륭한 사회교육 학습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농작물원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자 ‘이곳 농작물은 수확하여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하니 채취하지 말라’는 안내표지가 있었다. 내 손에 도토리가 한 줌 쥐여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도토리를 숲으로 도로 던졌다. 도토리 주인이 다람쥐일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들꽃학습원은 이름그대로 자연학습장이다. 마치 자연시간 같았던 청년과 중년 남성의 대화가 오래도록 잊히지 않으면서 앉아서 쉴 수 없었던 원두막에 대한 아쉬움은 더욱 크게 남는다. 그런 대화가 원두막에 걸터앉아 더 이어진다면 세대 간 단절된 지식과 소통을 확대할 기회가 될 것 같았다. 그 옛날 과수원의 원두막처럼, 들꽃학습원의 원두막이 울산시민들의 편안한 사랑방으로 새단장되기를 기대한다. 이애란 울산과학대학교 학술정보운영팀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