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현 남목중 교사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중학교 재학 중 한 번의 전학을 포함해 12년의 학창시절 동안 열 세명의 담임을 만났다. 학생 한 명 한 명을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선생님을 만난 적도 있고, 성적이나 가정환경으로 철저히 차별해가며 될성부른 나무의 떡잎 같아 보이는 몇몇 학생에게만 정성을 쏟는 선생님을 만난 적도 있다. 타고난 반골 기질에다 기타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될성부른 나무의 떡잎이 되지는 못했다. 들었던 잔소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계속 그렇게 공부 못하는 애들이랑 어울리면 너 인생 망한다.”였다.

대학 4학년이 될 때까지 졸업하고 뭐해서 먹고 살까를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학비 일부는 부모님이 대주셨지만 그 외 생활에 필요한 비용은 직접 벌어서 써야 했다. 마지막 학기에 교생 실습을 다녀오고 나서야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늦은 결심이었던 만큼 결심이 현실이 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임고생’이라는 이름의 청년 백수로 지내면서 자주 고민했던 건 ‘과연 어떤 담임이 되어야 할까?’였다. 이상하게도 본받고 싶은 선생님의 모습을 상상할 때마다 초·중·고등학교 때의 선생님들은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대학 시절 지도교수님이 나와 동기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져준 만큼만 하면 좋은 담임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부임 후 처음 맡은 제자가 우리 학번이라며 유난히 잘 챙겨준 교수님이었다. 통학은 어떻게 하는지, 누구와 친하게 지내는지, 학교생활을 하는데 어려운 점은 없는지 등등.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많은 것을 물어보고, 좋은 조언을 해주곤 했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이전까지는 ‘선생님’과 그런 대화를 한 적이 없었으므로.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어색함이 머물던 마음 한 구석에는 감사함과 존경심이 남았다. 교수님처럼 먼저 학생에게 다가가주는 담임이라면? 말은 하지 않아도 학교에 다니는 것이 힘들고 괴롭다는 걸 알아주는 담임이라면? 기꺼이 믿고 의지하고 싶을 것 같았다.

따라 해보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다. 애들은 초장에 잡아야 한다(!)는 학급경영의 불문율을 깨보고자 시종일관 다정다감 모드로 대하다가 교실붕괴를 몸소 체험하기도 했다. 이제는 상황에 맞게 완급을 조절해가며 아이들을 대하고 있다. 그 가운데 교수님께 배운 한 가지, 내가 먼저 아이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원칙은 꼭 지키려고 하고 있다. “선생님하고는 말이 잘 통해요.” “선생님이 우리를 잘 챙겨주셔서 정말 좋아요.”라는 말들은 언제 들어도 뿌듯하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는 이런 명대사가 있다. “추억은 추억일 뿐이에요. 추억은 아무런 힘도 없어요.” 드라마를 보던 당시에는 이 대사에 절절히 공감하며 과거의 일들은 그 자체로 흘려보내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대사는 틀렸다. 추억은 상상 이상으로 힘이 세다. 지난 시간 지도교수님이 베풀어준 따뜻한 친절이 나의 습관이 되고 원칙이 된 것처럼,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의 상당 부분은 결코 힘없지 않은 추억들로부터 비롯된 것일 테다. 어쩌면 오늘 내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의 일부는 10년 혹은 20년이 지나도 그들의 추억이 되어 살아 숨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정현 남목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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