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지역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안봉상(95)씨
강제징용피해자들...죽기전에 만나고파

▲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인 안봉상(95)씨가 징용시절의 사진을 보이며 당시 상황을 얘기하고 있다. 김도현기자

영문도 모른채 일본으로 끌려가
이국땅에서 생전 처음 배 만들며
하루종일 고된 강제노동 시달려
1년뒤 해방 맞아 목선 타고 귀국
거친 풍랑에 일주일 동안 표류도
울산 도착했을 땐 수중에 돈없어
강제징용 배상판결 감회 새로워

“죽기전에 나 같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만나보는게 소원입니다.”

울산지역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중 한 명인 안봉상(95·남구 무거동)씨는 일제 강점기 시절인 지난 1944년 8월에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일본행 배를 탔다.

안씨는 “(범서)면사무소에서 무조건 오라고 해서 갔는데 영문도 모른채 갔다. 신복부락에서는 나 혼자 였다. 울산에서 부산까지 기차를 타고 간 뒤 다시 전국에서 모인 징용자들과 함께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24시간을 꼬박 가니까 일본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그 당시 그의 나이는 22살이었고,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안씨의 부인 박말필씨는 당시 17살의 어린 새댁이었다.

그가 도착한 곳은 오사카 지역의 조선소 인부들을 위한 숙소였다. 경상도와 전라도 등 전국에서 끌려온 6000여명이 이 곳 숙소에 묵었는데, 한 방에 17명씩 배정돼 함께 생활했다.

안씨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내가 묵은 곳은 1층 11호실이었다.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하도 싸우니까 결국 일본 관리자들이 나중에는 경상도·전라도 사람들을 분리해서 다른 숙소에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안씨는 오사카 인근 한 조선소에서 배 만드는 작업 중 선체 조립 공정에 투입됐다. 소학교도 제대로 안 다니고 10대 때부터 농사말고는 해 본 게 없었지만 낯선 이국땅에서 생전 처음 배 만드는 일을 해야만 했다.

그는 “해뜨면 조선소로 가서 하루 종일 일하고 해지면 숙소로 오는 고된 생활이 반복됐다”고 회고했다. 그가 이렇게 일하면서 받은 임금은 하루 2원 1전(당시 쌀 한 가마니(80㎏) 평균 5원, 1원=4만원 가량)이었고, 식대로 하루 34전을 받았다.

안씨는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점심과 저녁은 조선소에서 먹었는데 주먹보다 작은 양이었다. 이 또한 강냉이(옥수수)나 콩, 고구마 간 것 등이 대부분이어서 힘든 노동에 항상 배가 고팠다”고 회상했다. 이렇게 일본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있을때 한국에서는 안씨의 첫 딸이 태어났고, 편지를 통해서 그 소식을 접했다.

▲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인 안봉상(95)씨가 징용시절의 상황을 얘기하고 있다. 김도현기자 gulbee09@ksilbo.co.kr

1년 가량 지났을 무렵 안씨에게는 기회가 찾아온다. 그는 “그날따라 점심을 빨리 먹고 쉬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해방이 됐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같이 있던 동료들 모두가 너무 기뻐서 만세를 외쳤다”고 했다.

하지만 해방이 되고도 바로 귀국하지 못했고, 3개월이 지난 그 해 11월께 징용자 200명과 일본 현지에서 살던 한국인 250명 등 450명이 함께 목선을 타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러나 배는 거친 풍랑과 폭풍우를 만나 표류했고, 급기야 배가 고장나 일주일 동안 바다에 떠다녔다. 안씨는 “육지에 도착해야 수리할 수 있어서 달리 방법이 없었다. 식량은 물론 물도 다 떨어져 바닷물을 마시거나 빗물을 받아서 마시기도 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다행히 운좋게도 인근을 지나는 다른 배를 만났고, 이 배에 있던 작은 통선을 타고 규슈의 작은 어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안씨는 “구주(규슈)에서 다시 50리(19.6㎞)를 걸어서 배를 타는 항구(후쿠오카)에 도착했고, 여기서 일주일을 기다려 부산에 가는 배를 탈 수 있었다”며 “우여곡절 끝에 오는 과정에서 그 동안 모은 돈 200원(현재 약 800만원)을 다 썼고 한국에 왔을때는 한 푼 도 없었다”고 했다.

안씨는 1년 3개월여만에 꿈에 그리던 고국 땅을 다시 밟았고, 부인 등 가족과 재회했다. 이후 아들 3명 등을 더 낳아 총 3남3녀의 자식을 둔 안씨는 손자가 11명에 증손자까지 둔 백발의 노인이 됐으나 여전히 그때의 기억은 잊지 못한다.

안씨는 “최근 뉴스(일제 강제징용 배상판결)를 보니 나 역시 강제징용으로 일본에 갔다온 사람으로서 감회가 새롭다”면서 “살아있을때 이 사람들(강제징용 피해자)을 한 번 보고 싶은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한편 울산에는 지난 2005~2008년 과거사위원회와 울산시 등의 전수 조사결과, 강제징용 피해자가 총 2162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나, 안씨처럼 조사대상에서 누락된 사람들을 포함하면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차형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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