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太和江百里 - (2)탑골샘과 미호리

▲ 미호리 ‘가메들’ 전경. 미호리 가메들은 백운산에서 씻겨내려온 흙이 비옥한 선상지 형태의 충적평야를 만든 곡창지대다. 드론촬영=최광호

태화강의 근원이자 모태 ‘탑골샘’
삼강봉 정수리에 빗방울 떨어지면
바람 부는쪽으로 물이 흘러내려가
태화강·형산강·낙동강으로 합류
탑골샘 샘물을 담은 ‘복안저수지’
미호리 벌판 ‘가메들’의 생명수
백운산 흙이 흘러내린 ‘미호들’
풍요로운 벌판 ‘충적평야’ 이뤄

백운산(白雲山·910m)은 신라 때 열박산(咽薄山)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밝고 광명한 산’이라는 뜻의 열박산은 삼국사기 권41 김유신열전에 나오는 산이다. 김유신은 서기 612년 나이 18세에 뜻을 세웠다.

“이웃 나라 적병이 점점 닥쳐오자 공은 장한 마음을 더욱 불러일으켜 혼자서 보검을 가지고 열박산 깊은 골짜기 속으로 들어가 향을 피우며 하늘에 고하여 빌기를, 중악(中嶽)에서 맹서한 것처럼 하고 천관(天官)께서는 빛을 드리워 보검(寶劍)에 신령을 내려 주소서! 라고 기도하니 3일째 되는 밤에 허성(虛星:현무)과 각성(角星:금성) 두 별빛이 내려오더니 검이 마치 동요하는 듯하였다”

▲ 바위에 쓰여진 백운산 탑골샘 표지.

구름이 항상 감싸고 있는 백운산은 김유신의 입지(立志)를 굳힌 기도굴이 있어 더욱 신령스럽다. 백운산 감투봉 아래 움푹 들어간 기도굴은 김유신이 제사를 지내고 무예를 연마했던 성지다. 그렇게 보면 백운산은 신라 화랑의 본산이라고 할만하다.

백운산은 서고동저(西高東低)의 울산 지형을 그대로 이어받아 대곡천으로 물을 보내준다. 우리나라 지형이 동고서저의 지형이라면 울산은 서고동저의 지세다. 백두대간이 동쪽으로 융기되면서 고지대를 형성했다. 그러나 울산은 전체적으로 한반도의 지형을 받아오면서도 서쪽의 산맥들이 높이 솟아 동쪽은 낮고 서쪽은 높은 지대가 형성됐다.

울산의 태화강은 서쪽의 큰 산에서 물이 흘러내려와 바다로 가는 동류(東流)의 잔가지가 실핏줄처럼 설켜 있다.

▲ 백운산 탑골샘 계곡. 융기된 백운산의 안산암.

성지(聖地) 탑골샘

백운산이 화랑의 성지라면 탑골샘은 울산 태화강의 근원(根源)이자 모태다. 해발 550m 높이에 있는 탑골샘은 태화강 백리의 유장한 여정을 시작해 거리상으로는 47.54㎞, 시간상으로는 6500만년의 세월을 이어간다. 홍수에 탑이 굴러 내려와 ‘탑골’이라고 불리는 이 계곡 인근에는 실제로 사찰터가 곳곳에 눈에 띈다.

탑골샘으로 오르는 길목 바위에는 여암(旅菴)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의 산경표 문구가 씌어져 있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산은 물을 가르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

백운산 북쪽 10분 거리의 삼강봉(三江峰)은 산자분수령의 진수를 보여주는 모델이다. 삼강봉 정수리에 빗방울이 떨어지면 바람이 부는 쪽으로 물이 흘러내려가 각기 다른 운명의 강이 된다. 이름하여 태화강, 형산강, 낙동강.

백운산과 삼강봉에서 흘러내린 물은 두서면 내와리에서 형산강을 타고 경주를 지나 포항까지 긴 여정을 이어가고, 소호 쪽으로 흘러내린 물은 경주 산내를 지나 밀양댐에 몸을 담갔다가 낙동강으로 합류한다.

하루 15t의 물이 솟는 탑골샘은 시작은 미약했으나 성대하고 풍요로운 땅을 약속했다. 백운산 정상의 물은 형산강과 낙동강에 일부의 물을 넘겨 주고 태화강의 백리길에 몸을 싣는다.

▲ 미호리 복안저수지 전경(드론촬영).

탑골샘 정기 듬뿍 담은 복안저수지

탑골샘 샘물이 가득 담긴 복안저수지는 백성들에게 보내주는 성수(聖水)같은 것이다. 복안저수지는 한국농어촌공사가 지난 1985년~1991년 만든 것으로 미호리 벌판 ‘가메들’에 생명수를 댄다.

복안저수지에 담긴 물은 탑골샘이 있는 탑골에서 나온 차고 맑은 물이다. 밀양 얼음골과 비슷한 모양의 안산암이 계곡을 메우고 있는 탑골샘에는 안산암 돌틈에서 물이 넘쳐나와 아미산(603m)과 천마산(613m) 사이의 협곡을 빠져 나온다.

천마산은 형산강으로 물이 흘러가는 두서면 내와리와 미호리를 울타리처럼 가로막는 그야말로 ‘산자분수령’이다. 또 그 맞은편의 아미산은 용암산과 함께 백운산의 남동쪽 물을 가두는 인보저수지의 울타리 역할을 한다.

천마산과 아미산의 계곡은 울산에서도 보기 드문 침식협곡이다. 복안저수지에서 내와 탑곡 입구까지의 긴 골짜기를‘가매달’이라고 부르는데, 이 가매달에는 가매소, 구이소, 호박소 등 크고 작은 10여 군데의 소가 있다. 선녀탕을 비롯해 구렁이가 약이 올라 빠져 죽었다는 구이소, 소금장수가 계곡을 건너다 발을 헛디뎌 소금가마를 빠뜨리면서 계곡물이 짠물로 변했다는 소금쟁이소, 가마 타고 계곡을 건너던 색시가 미끌어져 빠져 죽었다는 요강소 전설도 있다.

 

풍요의 땅 미호리

미호리 들판은 서고동저(西高東低)의 울산 지형을 그대로 본떴다. 백운산에서 흘러내린 비옥한 흙은 아미산과 천마산을 거쳐 미호리 들판을 풍요로운 약속의 땅으로 변신시켰다. 아미산과 천마산 사이의 협곡을 빠져나온 물은 빠르게 미호리 들판을 적시고 수천만년에 걸쳐 토사를 끝도 없이 날라 이윽고 둘도 없는 부채꼴 모양의 선상지(扇狀地)를 남겨 놓았다.

가메들을 가로지르는 대곡천은 백운산 탑골샘에서 흘러온 물을 풍요로운 벌판에 고루 대주는 대동맥 같은 역할을 한다. 충적평야는 수백만 수천만의 아득한 세월 동안 인간의 역사를 땅에 묻은 채 하루 하루 물을 흘려보내고 그 위에 새로운 지층을 만들어 낸다.

미호리(嵋湖里)는 ‘아미산’에서 ‘미’자를 따고, 가매달 계곡의 호소에서 ‘호’자를 따서 명명했다. 미호리 들판 가메들은 두서면에서도 가장 넓은 충적평야이면서 두꺼운 선상지이다.

6500만년의 수고가 이룩한 자연의 기적은 인간이 감히 엄두도 못내는 존엄 그 자체일 뿐이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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