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가을은 어찌 이리도 잠깐인가. 떨어져 뒹구는 허망한 삶들 위로 어느새 무서리가 내렸다. 무서리가 몰고 온 고요함인가, 고요를 틈타 내린 무서리인가. 기러기 떼 울며 떠난 텅 빈 들판에는 고요함만 가득하다. 슬픔마저 고요한 적막강산(寂寞江山), 무서리 머금은 고요해진 슬픔사이로 냉기품은 바람이 무심히 지나간다. 들판도 이제는 선(禪)에 잠긴 것인가.

겨울은 묵언(默言)과 명상(冥想)을 통해 분주함으로 가득했던 들판이 내면의 질서를 회복하는 시간이다. 회복된 질서를 통해 또다시 가득 새로운 생명을 꽃피울 것이다. 묵언과 명상은 흐트러진 내면의 질서를 회복하고 유지하는 훌륭한 수단 중 하나다. 불가에서는 이를 수행의 으뜸으로 여긴다. 평화와 행복 같은 좋은 감정도 내면의 질서가 유지될 때 생겨난다. 물론 그 역(逆)도 성립한다. 1주후면 불가의 스님들도 겨울안거(冬安居)에 들어간다. 장장 석 달 동안 일체 외부와의 연결을 두절한 채 묵언과 명상만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바른 삼매(正定)를 위한 바른 정진(正精進), 실로 고난한 수행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정신적인 개념을 사용해 신체질서를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하지만 신체상황을 정신적인 개념을 사용해 개선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불행하게도 현대문화는 쉽게 우리의 신체상황을 엉망으로 만든다. 신체 상황이 정상궤도를 이탈하게 되면 좋은 감정도 사라진다. 만성적으로 비참한 기분에 빠져들기도 한다. 이때 동물들은 움직임으로써 신체상황을 개선한다. 이것이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만사가 귀찮더라도 단 1분만 움직여보라. 잠깐의 시간만 지나면 피로가 가시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움직임의 시간이 곧 30분이 되고 1시간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1분의 법칙’이다.

움직이면 세로토닌 수치가 증가하고 노르에피네프린이 충전된다. 그리고 도파민을 선물한다. 모두가 소위 행복 호르몬이다. 움직이면 더 자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이유다. 미국 종양간호학회(Oncology Nursing Society)에서는 암성피로의 가장 효과적인 중재를 운동으로 본다. 암 환자에서도 신체 활동이 감소하면 암성피로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겨울은 더 자주 움직여야 하는 계절이다.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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