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기독교 제빵사 판매거부 정당 판결
민주주의 다수결 원칙으로 운영되지만
소수자에 대한 관용·배려 전제로 해야

▲ 박성호 울산지법 부장판사

미국 연방대법원은 2015년 6월26일 미국 전역에서 동성혼을 합법화하는 역사적인 판결을 선고했다(Obergefell v. Hodges).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수년간, 심지어는 수십 년간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기도해온 당사자와 지지자들의 승리이자 미국의 승리”라며 이 판결을 환영했다. 위헌과 합헌의견이 5대 4로 팽팽하게 대립했던 오버거펠 판결이 선고된 후, 미국 전역에서는 이 판결을 환영하고 지지하는 국민들이 자신들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명하는가 하면, 이 판결을 비판하면서 동성혼 합법화를 반대하는 여론도 거세게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어느 주에서는 법원서기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혼인을 한 동성 커플에게 혼인허가서 발급을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어느 주에서는 제과점과 꽃집, 사진관을 운영하는 업주들이 수정헌법 제1조에 의해 보장되는 표현의 자유나 종교의 자유를 근거로 결혼식을 하려는 동성 커플에게 웨딩 관련 서비스의 제공을 거부하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독실한 기독교신자로서 미국 콜로라도 주(州)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던 잭 필립스도 자신의 제과점을 방문한 동성 커플에게 종교적 신념에 따라 동성혼을 반대하기 때문에 결혼식 피로연을 위한 웨딩케이크를 제작해줄 수 없다며 그 판매를 거부했다. 동성 커플은 제과점 주인인 잭 필립스가 콜로라도 주의 차별금지법을 위반했다며 콜로라도 시민권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고, 위원회는 필립스의 행위가 콜로라도 주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콜로라도 주법원도 동성 커플에게 웨딩케이크의 판매를 거부한 필립스의 행위가 주법을 위반했다고 판결하자, 필립스는 수정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가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며 연방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했다. 연방대법원이 필립스의 상고허가신청을 받아들여 본격적인 심리에 들어가자, 미국의 많은 국민들은 동성 커플의 혼인할 권리와 동성혼에 반대하는 기독교인의 종교의 자유가 정면으로 충돌한 이 사건에 대해 뜨거운 관심을 나타내면서 연방대법원이 또다시 기념비적인 판결을 내릴 것으로 기대했다.

마침내 올해 6월4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고심 끝에 7대 2의 의견으로 필립스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 사건을 심리한 콜로라도 시민권위원회가 수정헌법 제1조에 의해 요청되는 ‘종교적 중립성’을 지키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케네디 대법관이 집필한 법정의견은 동성 커플에게 웨딩케이크 판매를 거부한 필립스의 행위가 진실한 종교적 신념과 확신에 기초한 것임에도 위원회가 다른 제빵사 사건들과 달리 심리과정에서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 종교적 적대감을 드러냄으로써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을 위반했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정작 미국의 많은 국민들이 이 사건 판결을 통해 해결되기를 바랐던 쟁점인 종교적 신념에 의한 필립스의 행위가 성적(性的)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주법에 위반되는지 등에 관해서는 그 판단을 유보했다.

얼마 전 우리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밝힌 바와 같이 ‘양심의 자유’는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조건이자 민주주의 체제가 존립하기 위한 불가결의 전제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지만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을 전제로 할 때에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자신의 종교적 양심에 따라 동성 커플에게 웨딩케이크의 판매를 거부한 행위의 정당성이 문제된 이 사건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결국 종교(양심)의 자유가 가지는 헌법적 가치를 바탕으로 동성혼에 관한 변화된 질서를 반대한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배려를 강조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박성호 울산지법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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