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양에서 석남사로 가는 길을 따라가다 향산초등학교를 지나자 마자 오른쪽 사잇길이 보인다. 길의 초입부터 그리 넓지 않은 데다 마치 뱀이 누워 있는 것처럼 굽은 길이 연속이다. 사람들도 별로 다니지 않는다. "이 길이 맞나" 싶을 때 향산지석묘 안내판이 이정표 역할을 대신해 준다. 향산지석묘를 지나 조금 더 가면 울산에서 밀양 가는 도로가 한창 공사중인 것이 눈에 들어 온다. 도로너머 언덕배기 아래에 가지런히 집들이 늘어서 도로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멀리서도 마을회관과 그 뒤로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눈에 띈다. 이 곳이 바로 대리마을로 동래정씨(東來鄭氏)의 대표적 집성촌이다. 뱀의 등처럼 휜 고갯길을 따라 온 것과는 달리 마을 앞쪽은 넓은 들이 펼쳐져 있는 데다 비 그친 틈을 타 몇몇 마을 사람들이 개울가를 훑고 있다. 전형적인 여름 시골마을 풍경이다. 울산에서 밀양가는 길이 마을 들판을 질러 마을입구의 언덕을 뚫고 시원스레 지나가지만 마을 입구에 진출입로가 완성될 경우 사람들의 방문길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전망이다.

 지내리 대리마을을 중심으로 지내리의 신리 등에 동래정씨들이 지금도 80여 가구가 담을 잇고 살고 있다. 동래정씨의 대표적 집성촌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그리고 이곳은 또 동래정씨 회은공파(淮隱公派)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483년전 울산에 처음으로 자리를 잡은 곳이기도 하다. 그 뒤 반세기동안 지내 대리를 중심으로 산전리, 등억리, 길천리, 궁근정리 등 상북면 지역 곳곳에 세거하게 됐다. 최근 발간된 울주군지에 지내리에만 동래정씨가 97가구가 모여 사는 것은 물론 산전 54, 등억 29, 길천 23, 궁근정 32가구가 각각 살고 있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곳 상북면 지내의 동래정씨는 2개 대파로 구분할 경우에는 교서랑공보파(校書郞公輔派), 24개파로 구분할 경우에는 회은공파에 속한다. 그래서 지내마을은 동래정씨 교서랑공보파 회은공파의 집성촌이다. 파선조인 회은공 정조(鄭조)는 시조인 정회문(鄭繪文)의 11세이며, 입향조인 남은(南隱) 정택(鄭擇)에게는 5대조이다. 회은공은 고려때 진사를 지냈다. 지내마을 정씨들은 지난 2000년 파선조 회은공의 재실(회은재 淮隱齋)을 짓고 입향조의 선대인 15세 인손으로부터 8대인 창(昌) 할아버지까지 남은공 성역에 설단했다. 회은재는 마을의 윗쪽에 자리잡고 있어 마을의 입구에서부터 쉽게 찾을 수 있다. 입향조인 남은공을 모신 재실인 남은재는 회은재 바로 밑에 자리하고 있다.

 동래정씨가 이곳 상북에 처음 온 것은 1519년 16세손 남은(南隱) 정택(鄭擇). 남은은 1519년 기묘사화를 만나자 아버지 인손(仁孫)을 등에 업고 남으로 내려와 경주 삼정동(현재 울주군 두동면)에 잠시 은거하다 상북 지내로 와 자리를 잡았다. 그 뒤 남은의 후손들은 지내 대리마을을 중심으로 상북과 전국으로 퍼졌다. 현재 남은공의 후손은 결혼한 성인만도 1천800가구에 달한다.

 남은의 현손으로 동래정씨 20세손인 정대업(鄭大業년)은 1594년 언양에서 태어나 무과에 급제,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아 관북(關北)의 백성들을 외복(畏服)시켰으며 병자호란(1636년)이 일어나자 언양에서 의병장이 되어 유서를 써 두고 북상해 이천에서 적과 맞서 싸우다 1637년 순국했다. 1866년 영조때 호조좌랑으로 승직됐으며 순절록(殉節錄)은 영의정 정원용(鄭元容)이 서문을 쓰고 1865년 발간됐다.

 입향조 남은의 15세손이며 시조로부터는 31세손인 종손 정진구(鄭鎭九)씨는 매년 음력 10월3일에 전구에 흩어져 있는 문중들이 이곳 대리 재실에 모여 제사를 지내는 것은 물론 양력 3월1일에는 정기문회를 갖고 문중의 여러 가지 일들을 의논하고 후손들에게 선조들의 내력들을 들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또 예전에는 한 마을에 100가구가량의 일가들이 모여 있어 다른 성씨들이 마을에 자리잡기 힘들었다. 입향조의 13세손인 정인택(鄭寅澤) 문중회장은 이곳은 몰정가였기에 다른 성씨들이 이곳에 이주를 하더라도 정씨들에 끼여 못산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었다고 설명했다.

 종손인 진구씨와 같은 항렬인 정진만(鄭鎭萬) 화수회장은 지금은 모(謨)자 항렬인 입향조의 14세손들이 문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문중의 전체 촌수가 28촌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종손인 진구씨가 부산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으며 문중회장인 인택씨는 동래정씨종약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정진만 화수회장도 종약소일을 맡고 있다. 정임성(鄭壬成) 전 양상읍장은 정인태(鄭寅泰)씨와 함께 종친회 감사를 맡고 있으며, 정인주(鄭寅注)씨는 종친회 유사로, 이름은 같지만 한자가 다른 정인주(鄭寅柱)씨는 종친회 총무로 각각 활동중이다. 또 기초의원으로 활동했던 정인조 전 울주군의회 의원과 정순모(鄭舜謨) 전 울주군의회 의원은 나란히 종친회 상임고문이다. 범서농협 이사인 정준석(鄭俊錫)씨는 화수회 부회장으로 정태우(鄭泰佑), 정만수(鄭萬洙)씨와 함께 하고 있다.

 상북부면장으로 퇴임한 정진호(鄭鎭浩)씨는 자영업을 하고 있는 정진학(鄭鎭學)씨와 화수회 감사를 맡고 있다. 언양에서 대일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정진섭(鄭鎭燮) 원장은 화수회 총무로, 유사인 정성모(鄭成謨)씨는 길천리 지화이장으로 활동중이다. 서찬수기자 sgij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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