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IT전문가등과 협업 나서고
유전자 정보공유할 기반 마련을
다양한 유전체 정보확보 힘써야

▲ 이창기 한국은행 울산본부 기획조사팀장

인류의 역사는 치명적인 질병의 발생,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과 함께해 왔다. 14세기 중엽부터 약 300년간 유럽을 뒤덮은 흑사병과 같이 미생물에 의한 대부분의 질병은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으로 치료법이 개발되었으며 선천적인 심장병으로 짧은 생이 불가피했던 사람들은 동물·인공 판막 등을 이용한 수술법의 발견으로 정상인과 같은 수명을 유지하게 되었다. 또한 원인 모를 이상 증상 지속 및 악화로 당시 사형선고로 간주되었던 당뇨병도 캐나다 밴팅의 인슐린 발명과 함께 해결되어 지금도 인슐린은 가장 위대한 발명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발병 이후 치료방안을 모색하던 것에서 더 나아가 발병하게 되는 근본 원인을 규명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상당수의 질병은 개인의 유전적 요인에 따라 발생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인간의 전체 유전자(게놈) 지도를 작성하고 유전자 배열을 분석하는 작업에 착수하였으며, 그 결과 2001년 2월 DNA 염기 서열의 약 99%를 밝혀내는 등 유전자 수와 위치를 규명한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완료하였다. 게놈지도를 바탕으로 한 각 유전자 기능 분석은 어떤 유전자가 어떤 질병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내어 유전성 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교체하거나 작동하지 못하도록 조치할 수 있다. 또한 개인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질병들을 미리 피해 가는 등 각 개인의 유전자 특성에 따른 맞춤 의료(Precision Medical) 시대를 가능하게 한다.

다만 게놈을 구성하는 30억 개 염기쌍들의 기능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방대한 유전 데이터가 필요하고 이에 대한 분석에 천문학적 비용과 시간이 투여돼 그간 유전자들의 기능을 밝히는 작업은 속도가 더딘 편이었다. 하지만 최근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Next Generation Sequencing) 기술, 인공지능(AI) 및 빅데이터의 발달로 데이터를 빠르고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었고, 거대한 데이터 저장문제도 압축저장기술로 해결되면서 본격적인 분석 작업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국들은 미래 주력산업으로의 육성을 위해 게놈사업에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울산시와 UNIST가 2017년부터 3년간 110억원을 투입하여 ‘울산 1만명 게놈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게놈의 기능을 해독·분석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개체수인 1만명을 확보하여 다각적인 정보를 생산·가공해 빅데이터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맞춤형 의료서비스를 비롯한 2차, 3차 고부가가치 데이터를 창출할 계획이다. 특히 UNIST는 독자적인 해독과 분석기술을 축적해오고 있으며 한국인 표준 게놈 서열(KOREF)을 고도화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와 함께 고무적인 모습이다.

동 사업이 보다 성공적으로 귀결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몇 가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 현재 단일학과 중심의 연구센터를 병원, IT전문가, 지자체 등으로 구성된 협의체로 확대하여 시너지효과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가 강점을 보이는 정보통신, 의료, 바이오, 화학 등의 융합 분야인 만큼 중지를 모으면 보다 효율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유전체 정보가 울산지역에 국한된 만큼 보다 표준적인 결과 도출 및 지역 비교를 위해 향후 동남권 등으로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 유출에 대한 우려로 병원 등 해당기관들이 유전자 정보공유를 꺼리는 만큼 동 데이터들에 대한 암호화를 강화하고 개인정보활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영국, 일본 등 주요국이 해당 연구에 대한 규제를 최소화하고 정보 공유를 극대화하는 노력을 보임에 따라 우리도 합리적 연구를 위한 기반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셋째, 동 사업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홍보와 함께 보다 많은 유전체 정보 확보에 힘써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적인 유전자 분석 기술에 근접하였지만 분석용으로 확보한 유전체 정보는 아직 선진국의 10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영국은 500만, 미국은 100만, 싱가포르 및 핀란드는 각각 100만명, 50만명을 목표로 정보 확보에 나서고 있다. 유전체 확보량이 분석결과의 정확도와 비례하는 만큼, 1만명 정보 수집이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관련 홍보에 힘쓰고 이후 유전체 확보 목표를 확대해야 한다.

조선·자동차산업의 부진이 당분간 예상돼 울산의 신성장동력 육성이 절실한 지금 동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돼 지역경제에 활력이 되고 미래 주력 산업으로 성장하길 고대한다. 그리고 맞춤형 의료의 현실화가 희귀난치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분들에게 큰 위로가 되길 기원한다. 이창기 한국은행 울산본부 기획조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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