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목 울산박물관 관장·고고학 박사

르와-꾸우랑의 제자였던 비알루는 스승의 연구방법을 계승하여 선사미술의 기호체계 분석을 통하여 일종의 언어구조의 문법과 유사한 원리를 찾으려고 했다. 연구자들은 기호나 상징이란 말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지만 빈약한 선사시대 자료를 통해 이를 구분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비알루는 동물과 사람처럼 현실을 기반으로 형태를 파악할 수 있는 표현물을 구상적 주제로, 순수한 관념적 표현인 기호를 추상적 주제로 구분했다. 또 어느 범주에도 해당 되지 않는 것을 규정되지 않은 표현물로 분류했다.

그는 기호와 규정되지 않은 표현물은 모두 현실에서 볼 수 없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주제가 반복적으로 표현되거나 그 속의 어떤 내적구조를 인지할 수 있는 것을 기호라고 가정했다. 기호를 분석한 결과를 당시 사회의 구성이나 유적의 입지, 영토 등 사회경제적 영역으로 확장했다. 그는 주관적이고 관념적인 연구풍토를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연구로 전환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해석에 있어서는 한 가지 이론으로 다른 이론을 배척하지 않는 다원적 입장을 견지하였다. 다시 말해서 선사미술이 종교나 신앙의 범주에 해당한다는 사실이나 어떤 종교적 행위(토템, 입문, 사냥 마술, 샤먼의식 등)가 있었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림의 제작 동기도 하나로 보지 않고 어떤 그림은 신화를 묘사한 것으로, 다른 것은 종교의식과 결부되어 있으며, 때로 중요한 사건들을 기록하는 수단이 된다고 보았다. 비알루는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이론이나 해석은 진지한 논쟁의 대상보다는 담론으로 받아들였다.

그가 들려준 일화가 하나있다. 1990년 중반 일주일 동안 파리인류박물관에 세계 각국의 많은 연구자들이 모여 바위그림에 관한 연구논문을 발표하고 토론을 벌었다. 마지막 날, 한 청중이 세미나에 초청되어온 호주 원주민에게 “바위 아랫부분에 표현된 손바닥 그림은 엉성하지만 바위 위쪽에 그림은 매우 정성스럽게 그린 것 같다. 그것이 어떤 종교적 의미가 있는지?”라고 물었다. 실제 바위그림 의식을 행하는 그 원주민은 “바위 아랫부분에서 연습하다가 그림이 잘 그려지면 바위 위쪽에 그린다”고 대답했다.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었던 연구자들은 순간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모든 해석을 관용적으로 포용하는 다원주의는 역설적이게도 이론탐구에 큰 의미를 둔 연구자들을 패닉상태로 만들었다. 그것이 비알루가 바라는 바였다. 이상목 울산박물관 관장·고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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