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응과 공존 일깨우는 계절변화처럼
국회도 정쟁대신 민생 돌아봐야할 때
내년풍작 예고하는 첫눈같은 세상을

▲ 김종국 서울교통공사 서비스안전센터장

시장의 먹자골목을 지나노라면 전과 다르게 북적이는 가게보다는 문을 닫은 점포가 부쩍 늘어난 느낌이다. 시장상인이나 택시기사 또한 불경기가 오래 지속되어 불안하기만 한데 이제는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도 접었다며, 경제가 이 모양인데도 정부는 대책도 못 내놓고 정치권은 싸움만 하고 있다고들 개탄한다. ‘갑질’과 ‘묻지마 범죄’가 난무하는 가운데 정치권과 언론은 원색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을 총동원하여 앞장서서 분노하지만 분노 그 자체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걸 웬만한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대책에 골몰하는 정부의 곤혹스러운 모습에 대해서도 문제 해결에 대한 진정성 보다는 무능을 감추려는 무책임한 임기응변일 뿐이라는 지적이 가슴 아픈 오늘이다.

가을걷이가 끝났다. 지금 쯤 열심히 땀 흘려 일해 온 농부들은 한 해를 되돌아보며 작황에 대한 뿌듯한 감회와 더불어 올 농사를 거울삼아 내년의 영농계획을 어렴풋이나마 미리 그려보고 있을 것이다. 수능을 치른 수험생들도 곧 있을 수능성적 발표를 기다리며 진로와 학과 선택에 골몰하는 시점이니 가을은 거두는 계절인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중요한 시기라 하겠다. 농사와 공부는 물론 자신의 책임으로 임하는 모든 일들에 있어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은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감사와 반성의 계기로 삼겠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두고 과정에 대한 반성도 없이 남의 탓을 하거나 변명으로 일관하다보면 내년 작황도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문턱에서 문득 개미와 베짱이가 나오는 ‘이솝우화’를 떠올리며 성큼 다가오는 겨울을 계절의 종점인 아닌 미리 내년을 준비하는 출발점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마지막 단풍이 지고 있다. 온 산을 붉게 물들이던 풍경은 가히 장관이었다. 마지막 낙엽은 어떤 여정을 거쳐 새 봄의 희망으로 우리에게 다시 다가올까, 천번만번 윤회하는 자연의 섭리가 신비롭고 궁금하기만 하다. 생존 여건의 변화를 미리 감지하고 수액을 뿌리로 끌어내려 잎을 떨구고는 긴 겨울을 참고 기다렸다가 봄이 되면 다시 가지로 물을 올려 어김없이 새 잎을 피워내는 나무의 지혜는 누가 가르쳐준 것일까.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상에만 집착하는 우리들은 감성적인 ‘낙엽예찬’만 할 것이 아니라 ‘낙엽이 지는 이치’도 배울 줄 알아야 하겠다. 자연이 가르쳐주는 생존의 법칙은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거부와 대립이 아니라 순응과 공존이기 때문이다.

예산정국을 앞두고 여야가 국회 정상화에 합의 하였다는 소식이다. 연례행사와도 같은 대립과 파행은 회기 내에도 끊이지 않을 전망이지만 그럼에도 국민들의 큰 동요는 없을 것이다. 정쟁의 이면에서 저마다 지역예산 챙기기가 끝나면 민생법안과 서민경제를 내세우며 회기 막바지에 예산안과 연계한 극적인 타결을 이끌어 내는 정치인들의 탁월한 능력과 비상한 꼼수를 익히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소설(小雪)이 지났지만 아직 첫눈은 오지 않았다. 첫눈이 오면 떠나기로 한 사람도 있다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경기회복을 기대하는 소상공인들과 내년의 풍작을 준비하는 농민, 취준생과 수험생들의 소박한 꿈이 이루어지는 첫눈 같은 세상을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 묵은 정쟁의 종지부를 찍고 하얀 눈 위에 상생과 협치, 공생과 공존의 아름다운 발자국을 남기는 첫 눈 오는 날이 이 사회의 새로운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김종국 서울교통공사 서비스안전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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