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주장등 강해지면 소통은 불가능
가장 좋은 방법은 ‘그대로 보여주기’
진정한 소통으로 시민 지지 확인 필요

▲ 정명숙 논설실장

‘뉴욕라이브러리에서’는 123년 역사의 뉴욕공립도서관과 92개 분점을 12주 동안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상영시간은 무려 3시간26분이나 된다. 감독은 다큐멘터리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프레드릭 와이즈먼이다. 지난해 10월11일 런던영화제에서 첫 개봉하고 미국 등지를 거쳐 꼭 1년 만에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했다. 한 달이 훌쩍 지났으나 전국 곳곳에서 관객이 관객을 불러 모으며 상영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는 도서관이 책을 대여해주고 읽는 곳이라고만 인식하던 우리에게 ‘도서관이란?’이라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미 볼 사람은 다 본 거나 다름없는 영화를 새삼 거론하는 것은 내용 때문이 아니다. 뉴욕공립도서관이 뉴욕시민의 영혼을 지키는 곳이라거나 뉴욕을 지키는 뿌리라는 등의 형이상학적 해석도 다른 이들에게 맡기도 싶다. 내용을 알고서 봤던 탓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돌아다녔던 단어는 난데없이 ‘소통’이었다. 조용하고 엄숙하게만 보이던 뉴욕공립도서관이 뉴욕시민들의 지식과 정보, 취미와 교양, 직업과 직장, 창의력과 창작욕을 나누는 엄청난 ‘소통의 공간’이라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은 말할 것도 없고, 이렇게 긴 다큐멘터리로 세계 곳곳의 수많은 사람들을 객석에 붙잡아 둔 프레드릭 와이즈먼의 ‘말 없는’ 소통 방식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이 영화에는 다큐에서 흔히 쓰는 기법인 내레이션이 없다. 인터뷰도 없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직원들,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강사들, 도서관 안과 밖의 풍경들이 바로 그들의 목소리와 함께 나열되고 있다. 별도의 설명은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늘어놓은 소소한 일상의 모자이크에서 관객들은 거대한 역사를 마주한다.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을 뿐인데 관객들은 감독의 의도를 고스란히 읽어내며 감동하게 된다. 바로 소통의 신비로움이다. 그의 소통의 방식은 주장도 강요도 아니다. 깊은 진정성과 애정을 갖고 눈에 보이는 그대로 말없이 보여주기다. 내레이션이나 인터뷰로 그의 의도를 강요하려 했다면 관객들은 결코 206분을 인내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SNS와 더불어 ‘소통의 시대’를 살고 있다. 공자·맹자까지 동원해가며 상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가르치려 하는 글들이 허공을 날아다닌다. 지독한 편견에 사로잡힌 일방적 자기주장들이, 공익에 상관없이 혼자만 즐거운 자랑거리들이 소통이랍시고 시도 때도 없이 안방까지 찾아든다. 하물며 아이들도 ‘들은 대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본대로 자란다’는데, 좋은 말이 모자라서 좋은 세상이 안 되었을까. 넘치는 소통이 왠지 불통의 이음동의어인양 답답하고 공허하다.

정치인들은 소통에 목을 맨다. 소통을 곧 ‘표’라고 생각한다. 송철호 울산시장은 아예 시정철학을 ‘소통’이라고 했다. 취임한지 5개월이 지났다. 그의 소통은 잘 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시정(施政) 지지도가 전국 꼴찌로 내려앉은 걸 보면 소통이 제대로 된다고 하기는 어렵다. 물론 여론조사로 만들어지는 지지도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다고 반드시 시정(市政)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때론 먼 미래를 내다보고 옳은 선택을 하려면 여론의 비판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진단은 필요한 시점이다. 아직은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는데 아무래도 소통의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만 같기에 하는 말이다.

프레드릭 와이즈먼은 ‘뉴욕라이브러리에서’ 뿐 아니라 전작 ‘버클리에서’나 ‘내셔널 갤러리’에서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를 택하고 있다. 계획된 내러티브를 거부하고 예행연습 없이 최소한의 편집만으로 정확하게 기록하는 다이렉트 시네마의 방법론이다. 아마도 가장 좋은 소통방식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프레드릭 와이즈먼의 눈으로 송 시장의 지난 5개월 소통시정(疏通施政)을 아무런 설명 없이,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면 시민들의 지지를 얼마나 얻을 수 있을까. 정명숙 논설실장 ulsan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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