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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기획특집지오그래픽 태화강
[지오그래픽 태화강]2004년, 삶의 터전도 애틋한 추억도 댐아래 잠겼습니다3. 물밑에 가라앉은 추억(상)-다시 읽는 太和江百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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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28  22: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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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삼정 마을(김병훈 제공)

천혜의 복지 대곡천 일대
살아있는 물길 ‘사행천’ 생명수 나눠
기름진 충적평야에 맑은 물 제공
선사시대부터 마을 형성 비결

수몰된 마을 ‘낙동강 페놀사건’ 원인
울산, 자체수원 확보 필요성 고조
2004년 삼정리 일대 담수 시작
지역 급수 보급률 높아졌지만
180가구 420여명 뿔뿔이 흩어져


백운산 탑골샘에서 발원한 태화강 물줄기는 복안저수지에 잠시 머물렀다가 미호천을 따라 점점 폭을 키우다가 이름을 바꿔 대곡천으로 흘러든다. 유촌마을을 휘감아돈 뒤 조개들을 엎어놓은 것같은 올망졸망한 야산 사이로 흘러든 물길은 마침내 대곡댐으로 몸을 담근다. 대곡천은 두동면 구미리, 두서면 미호리, 전읍리 기슭의 물을 한데 모아 대곡댐으로 인도하는 인솔자 역할을 한다.

대곡천의 물을 먹고 자란 양수정, 상삼정, 하삼정, 방리, 구석골 아이들은 지난 1995년 청천벽력같은 선언을 마주했다. 마을이 송두리째 물밑에 가라앉는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울고 어른들은 땅을 쳤다. 소도, 개도, 염소도 집을 떠났다.

   
▲ 하삼정 아이들(김응태 제공)

난민처럼 정든 집을 버린 이주민들은 뼈속에 아린 사연들을 가슴에 묻고 고향을 떠났다. 내가 밟던 마당과 내가 누워 잠자던 아랫목과 한가로운 여름 대낮 낮잠 자던 솔숲과 아낙들이 빨래하던 개울가도 모두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담수가 시작된 2004년 11월, 유난히 붉었던 단풍들도 점점 물밑으로 사라져갔다. 어른들은 댐 둑에 서서 눈물을 글썽이며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180가구 420여명은 언양, 범서, 부산, 경남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마을을 떠난 주민들은 구미리 양수정 마을 33가구, 삼정리 상삼정 마을 73가구, 삼정리 하삼정 마을 47가구, 천전리 방리 마을 19가구, 서하리 구석골 마을 10가구다.

두동면 구미리 양수정 마을, 두서면 삼정리·천전리의 상삼정·하삼정·방리 마을, 두서면 서하리 구석골 마을은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아온 천혜의 복지(福地)였다. 6·25전쟁이 한창이었을 때도 주민들은 피난을 가지 않았다. 그만큼 평화로운 곳이었다.

   
▲ 빨래하는 아낙(방리, 손수종 제공)

대곡천은 이 마을에 들어가 야산과 야산 사이를 구석구석 훑어내려 비옥한 문전옥답을 만들었다. 물길은 살아 꿈틀거리는 뱀장어처럼 논밭을 가로질러 생명수를 빠짐없이 나눠줬다.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마을이 수몰되는 비운을 맞은 것은 낙동강 페놀사건과 연관돼 있다. 페놀사건으로 나라가 온통 발칵 뒤집어진 상황에서 낙동강 물을 못먹겠다는 아우성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터져나왔다. 이 와중에 울산에도 자체 수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지면서 삼정리 일대의 운명이 결정됐다. 대곡천 맑은 물만 먹던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채 날벼락을 맞았다.

대곡댐을 만들면서 울산의 급수 보급율은 91%에서 94%로 높아졌다. 또 급수 인구는 약 83만명에서 114만명으로 늘었다. 삼정리 아이들은 얼굴이 비치는 맑은 물을 먹다가 낯선 땅에 이방인으로 들어가 약품 탄 수돗물을 먹게 됐다.

   
▲ 백련정 앞에서(1966년 2월 촬영·심재후 제공)

대곡댐은 유역면적이 57.5㎞, 총 저수용량이 2850만㎥다. 두동면 은편리 연화산 동쪽의 물과 박제상 기념관을 지나는 치술령 서쪽 물이 합쳐져 구리미를 거쳐 대곡천으로 흘러들고, 백운산과 삼강봉 동쪽 물은 미호리의 복안저수지와 전읍리의 수정내저수지 등에 잠시 머물렀다가 대곡댐으로 안긴다. 은편과 미호, 전읍의 하늘에서 내린 비는 마을 사람들의 마당과 논, 밭, 들, 과수원, 나무를 적시고 개울과 소, 여울의 물고기들에게 향긋한 산소를 뿜어준 뒤 넓은 중원에서 조우한다.

   
▲ 대곡박물관에 설치해 놓은 대곡댐 모형을 잘 살펴보면 하삼정 마을 등 물밑 풍경들이 들여다 보인다.

수몰된 마을들은 대부분 앞 쪽에 기름진 충적평야를 끼고 있다. 산에서 실려 내려온 흙이 야산과 야산 사이의 대곡천으로 들어가면서 두꺼운 옥토를 만든 것이다. 대곡천은 이 평야를 가로질러 자유롭게 이리저리 들판을 누비다가 이윽고 스스로 제방을 만들고 새로운 물길을 헤쳐나갔다. 뱀처럼 구불구불 나아간다하여 ‘사행천(蛇行川)’이라고 부른다. 삼정리 들판은 대곡천과 마을 사람들이 함께 만든 공동의 작품이다.

   
▲ 대곡댐에 파란 하늘이 비쳐 물 속 깊이 침잠한 추억을 반영(反映)한다. 대곡댐 전경.

삼정리 하삼정 마을은 대곡천을 끼고 좌청룡 우백호의 산세를 그대로 빼다 박은 풍수의 모델같은 동네다. 동네라는 말은 ‘洞(동)’자와 ‘內(내)’가 합쳐진 말이다. 하삼정 마을은 대곡천이 앞산 쪽으로 파고 들어가면서 흙을 뒷쪽으로 계속 밀어내 만들어진 마을이다. 동네라는 말은 하천의 안쪽에 만들어진 마을이라는 뜻이면서 물을 함께 먹는 마을(洞=삼수변+同)인 것이다.

수몰된 마을 들판은 대곡천의 흔적을 그대로 갖고 있다. 대곡댐에는 서리가 내리고 조만간 눈도 올 것이다. 그러나 대곡댐 물 밑에는 서리도 없고 눈도 오지 않는다. 이재명 논설위원 jmlee@ksilbo.co.kr·사진 출처=대곡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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