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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천년을 이어갈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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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29  15: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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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맑음 광고홍보학 박사, 리서치앤랩 대표

필리핀 북부 산악지역에 사는 부족들에게 아주 옛날부터 내려오는 마을 전통이 있다고 한다. 바로 손자가 태어나면 할아버지가 밀로 술을 빚어 애지중지 오랫동안 묵혀두었다가 드디어 손자가 커서 혼인을 할 때 혼례식 축하주로 쓴다고 한다. 이 밀 술은 다름 아닌 할아버지의 침으로 담근다고 한다. 고산 부족들은 고립된 지역에서 살고 있고 이런저런 이유로 효모와 같은 발효제를 구할 수가 없어서 손자를 본 할아버지가 그날부터 여러 날 밀을 입으로 정성스럽게 씹어 항아리와 같은 용기에 뱉어 술을 빚는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술이 약성이 좋아 이를 아는 외부 사람들이 많은 돈을 주고라도 사려고 하는데 웬만해선 팔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리 어렵고 돈이 필요하더라도 손자 결혼식에 쓸 것이니 팔지 않겠다는 할아버지의 손자 사랑과 애틋함이 역력하다. 은행나무를 한자어로 공손수(公孫樹)라고 한다. 여기선 손(孫)은 손자나 후손을 뜻하며 이는 은행나무는 손자 대에 가서 열매를 따 먹을 수 있다는 뜻이란다. 자기 대에는 먹지 못할 수도 있는 나무를 왜 심을까?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손자와 후손들이 조금이라도 이 나무의 덕을 보라고 심는 것이다. 즉, 은행나무(公孫樹)는 손자를 위해 심는 나무라는 뜻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예전에 딸이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집 안에 심었다고 한다. 정성으로 심고 애면글면 보살피면서 키워 딸이 다 자라서 시집을 갈 때 그 오동나무를 켜서 좋은 장롱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지금 우리 주변은 얼마든지 돈으로 좋은 술과 열매를 구할 수 있고 화려하고 튼튼한 혼수품들을 살 수 있는 풍요롭고 좋은 세상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정성과 사랑으로 만들어 놓은 것들이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그 어느 때보다 밀과 침으로 만든 술이나 후손들을 위해 심는 오동나무와 은행나무들과 같이 금은보화에 비교할 수 없는 선조들의 사랑과 정성이 담긴 유산이 필요한 때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360년 묵은 간장으로 음식을 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간장은 전라남도 담양에 뿌리를 둔 장흥 고씨 양진재 문중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간장이라고 한다. 이 문중에 내려오는 선조들의 유산이 미국보다 오래된 간장이라는 화제로 세계를 놀라게 했고 결국 대한민국의 역사를 세계에 새롭게 알리는 역할까지 했다.

사실 간장도 50년 이상 잘 묵히면 약성이 풍부해져 단순히 양념이 아니라 좋은 약으로도 쓸 수 있다고 한다. 고추장도 10년 20년 이상 보관을 잘하면서 숙성을 시키면 맛도 맛이지만 약성이 강해져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좋은 식재료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으니 손자 손녀들이 태어난 그해에 난 콩으로 메주를 만들어 된장을 담근 후 이 된장으로 간장을 빚고 또 잘 말린 태양초를 더해 고추장을 만들어 정성으로 숙성을 시켜 20년 30년 후에 손자 손녀들이 결혼할 때 내어 손님들을 대접하면 얼마나 감동적일까? 또 씨 간장으로 남겨 두고두고 후손들에게 물려주도록 하면 아마도 그 어떤 것보다 더 멋진 선조들의 유산이 될 것이다.

우리도 어느 정도 풍요로운 시대를 살다 보니 많은 사람이 돈으로 모든 것을 대신하려고 한다.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것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사람마다 귀찮다고 한다. 힘들어서 할 수 없다고 한다. 돈을 줄 테니 사서 하라고 한다. 쉽다면 쉽고 편리하다면 편리하다고 할 수 있지만, 후대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거꾸로 보면 어느 때보다 시간과 정성이 담긴 것들이 그 무엇보다 귀한 유산이 될 수 있는 시대다.

사랑과 정성과 세월이 담긴 유산을 찾기 힘든 시대지만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친구를 찾아다녔다는 철학자처럼 모두가 두 눈을 부릅뜨고 다음 세대에 물려줄 가문의 유산으로 삼을 만한 것들을 찾고 또 찾아야 한다. 이웃 일본 어느 음식점에는 천년을 내려오는 가문 비법이 있다고 한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도 눈앞에 보이는 재물보다 후손들에게 천 년을 물려줄 수 있는 정성스러운 유산과 유업을 만들어 가야되지 않을까?

[경상일보 = 경상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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