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지난 일요일, 울산 상북면 등억마을에는 집집마다 잔치가 벌어졌다. 사람들은 날이라도 잡은 것마냥 왼종일 김장에 시간을 쏟았다. 시내에서 온 사위와 아이들은 할머니가 입으로 밀어 넣는 김장김치에 싱글벙글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모처럼 시골마을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이웃으로 김장김치를 건네주러 가는 발걸음도 분주했다.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다/ 앞내에 정히 씻어 염담을 맞게 하고/ 고추·마늘·생강·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농가월령가 김장 담그기

김장은 종합예술이다. 지난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김장은 정확하게 말하면 ‘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 in the Republic of Korea)이다. 유네스코의 영문판 설명은 우리나라의 김장을 크게 ‘김장’과 ‘김치를 나누는 문화’로 요약한다.

유네스코는 또 김장을 ‘한국인의 정체성(Korean identity)’ ‘가족간의 협동(family cooperation)’ ‘자연과의 조화(harmony with nature)’ 등으로도 설명한다. 특히 봄에 새우·멸치 등을 소금에 절여 발효시키고, 여름에는 천일염을 구입해 쓴맛이 빠지도록 하며, 늦여름에는 빨간 고추를 말려 가루로 빻는 과정은 자연과의 동화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아래층의 아주머니/ 윗층 사는 아주머니/ 시골 사는 외할머니/ 우리 집이 시끌벅적// 도마 위에 배추포기/ 두 개 네 개 나눠지고/ 다듬으며 빻고 찧고/ 날렵하게 척척 장만// 한참 후에 맛난 김치/ 김장독에 가득가득/ 서로서로 맛을 보며/ 엄지 번쩍 김치 맛 최고…‘김장하는 날’ 전문(오하영)

김장은 배추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국인만 갖고 있는 김치DNA, 아이의 입에 한뭉치 넣어주는 혈육의 정, 그리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간의 비법으로 버무려진다. 고려시대부터 내려왔다는 김장은 따라서 ‘태극기’나 ‘한글’보다 결코 빠지지 않는 한민족의 상징이자 위대한 유산이다. 세대간, 지역사회 공동체간의 벽을 허물고 사방 이웃의 부엌과 안방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김장김치가 조만간 북한까지 갈 날도 머지 않았다.

100만 울산시민이 태화강가에 나와 손에손에 빨간 장갑을 끼고 빨간 김장김치를 서로 입에 넣어주는 풍경을 상상해본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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