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상고사건 일부 담당함으로써
저변에 대법원·헌법재판소 경쟁양상
상고제도 개혁은 시간이 지나면 가닥

▲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상고법원 도입 추진 과정에서 벌어졌다는 사법행정권 남용사건의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관련 법관들에 대한 전국법관대표회의의 탄핵 촉구 의결, 법원에서 기각되었지만 전 대법관들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에 이어 전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가 이어질 것이다. 상고법원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 도입을 위하여 소위 ‘재판거래, 사법농단’으로 일컬어지는 일들이 일어났을까.

현재 대법관 14명중 대법원장은 전원합의체 판결에만 관여하고, 법원행정처장은 재판업무를 하지 않으므로 실질적으로 12명의 대법관들이 3명씩 소부(小部)를 구성하여 연간 총 4만 여건의 상고사건을 처리한다. 대법관외에 부장판사급의 재판연구관 100명이 배치되어 상고사건 처리에 관여하고 있으나, 산술적으로 볼 때 대법관 1인당 연간 담당 사건수가 3000건이 넘는 데다가 사건 난이도와 기록 분량 등을 감안하면 업무가 과중하다고 할 수 있다.

대법원의 상고심에 대하여 부(部) 판결이 일반화됨에 따라 법률 해석의 통일이라는 법률심으로서의 기능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과 함께 판결 이유의 기재 없이 종결되는 ‘심리불속행’ 등으로 인하여 불신과 비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상고법원 도입은 대법원이 담당하는 상고 사건의 일정 부분을 담당함으로써 상고심 재판에 관한 대법관들의 업무 경감을 통하여 대법원이 법률심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추진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상고법원 도입 추진의 저변에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간에 최고 사법기관의 위상을 놓고 벌이는 자존심 문제가 깔려 있는 것 같다. 2012년에 헌법재판소는 조세감면규제법 부칙 적용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을 한정위헌이라고 뒤집었는데, 이는 쟁송의 최종적인 사법적 판단 권한이 어디에 있는지에 관하여 양 헌법기관간의 힘겨루기로 비춰졌었다. 법원내에는 대법원이 법률심 내지 정책법원의 기능을 함으로써 최고 사법기관으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라는 기류가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동기로 작용하여 소위 재판거래라고 일컬어지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고등법원에 일부 상고사건을 처리하는 부(部)를 설치하는 ‘고법상고부’ 도입의 입법은 2006년경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서 법원조직법개정안으로 국회에 발의된 바가 있는데, 당시 필자는 국회 전문위원으로서 법제사법위원회에 도입의 타당성 여부에 대한 검토보고를 한 일이 있다. 이 개정안은 대법관 증원이 타당하다는 등의 반대 의견으로 말미암아 제대로 심의되지 못한 채 무산되었다. 현실적으로 상고법원을 설치하는 방향의 상고심 개혁에 있어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소위 ‘삼세판’ 의식과 최고 법관으로부터 최종 판단을 받고 싶어하는 정서를 충분히 감안할 필요가 있다.

최근 법원행정처장은 국회 보고에서 대법관을 현재 14명에서 24명으로 증원하는 법원조직법개정안으로는 사실상 상고심 업무의 과중이 해소되지 않는다고 답변하였으며, 현재도 국회에 ‘고법상고부’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안이 다시 발의되어 있다.

상고심의 목적은 법령의 최종적 해석을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고, 국가 형벌권을 올바로 행사하도록 하는 데에 있다. 근대적 사법제도 이래로 상고심 제도는 대법관과 대법관 아닌 대법원판사의 2원적 구성 시기, 고등법원 상고부 시기, 상고허가제 시기 등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어느 시대에나 대법원의 사건 폭주로 상고심 기능에 지장이 있다는 문제 인식하에 상고제도의 개혁을 추진하여 왔다. 상고법원 논의가 사법행정권 남용의 동기로 변질된 것은 사법부의 불행이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 상고법원 도입을 둘러싼 진실이 드러나고, 상고심 개혁도 가닥이 잡힐 것이다.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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