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현 남목중 교사

“선생님, 저 이 영화 봤어요,”

“그래? 재미있어? 반에서 몇 명이나 봤는지 손들어볼까?”

“네. 진짜 재미있어요.”

“본 사람이 하나, 둘, 셋, 넷··· 총 일곱 명이에요.”

내가 쓰는 1학년 사회교과서 5단원 맨 앞에는 영화 ‘샌 안드레아스’를 소개하는 글이 나온다. ‘샌 안드레아스’는 태평양판의 경계에 위치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이 일어났다는 가정 아래 만든 재난 영화다. 수업 전 미리 본 예고편과 영화 소개, 각종 리뷰에다 이미 영화를 봤다는 아이들의 감상평을 들으니 꽤 흥미로울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자연재해에 대해 다루고 있는 5단원을 마무리하는 중이니 자원에 대해 다루고 있는 6단원을 마무리하면 교과서 진도도 끝이다. 평소 자연재해에 대한 뉴스를 자주 접한 탓인지 아이들은 5단원을 그리 어려워하지 않았다. 다른 단원을 수업할 때는 무한대로 쏟아져 나오던 질문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대신 이따금씩 교과서를 보며 이런 질문을 했다. “선생님, 근데 이 사진 2012년 거예요. 왜 이렇게 오래됐어요?”, “와~ 뉴스 2015년 거네요?” 그렇다.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가 곧 자신의 관심사가 되고, 음원 사이트의 최신곡 차트가 곧 자신의 취향이 되는 열네 살 청춘들에게 6년 전 사진과 3년 전 뉴스는 일단 ‘헐. 이거 실화냐?’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시행 계획에 따라 작년에 새로운 검정 교과서에 대한 심사가 이루어졌다. 이어 각 학교의 교과서 선정 과정을 거쳐 올해 처음으로 지금의 교과서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교과서는 학습내용을 뒷받침하는 가장 최신의 혹은 가장 중요한 정보들을 실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료 끝 작은 글씨로 적힌 날짜를 훑어보며 자료에 관심을 가질지에 대한 여부를 삽시간에 판단한다. 교과서 속 글자들이 종이 위로 걸어 나와 아이들의 마음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내용이 곧 나에게 영향을 끼치는 ‘나의 일’처럼 여겨져야 한다. 시간이 오래 지난 일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된다. 공간적으로 멀게 느껴지는 일 또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천재(天災)만큼 인재(人災) 역시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지난주 경기도 고양시에서 일어난 온수배관 파열사고에 대해 잠시 언급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사고인데다 피해가 무척 크다는 이유 때문이었을까? 아이들은 몇 년 전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교과서 속 지진 이야기보다는 지금 자신에게 들리는 온수배관 파열사고 이야기에 보다 집중하는 듯 보였다.

다음번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아이들이 ‘나의 일’이라고 여길 수 있는 내용들을 교과서에 많이 실어줬으면 한다. 아이들의 삶과 유리된 교과 내용이나 상식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는 지식은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교과서는 수업이라는 매개 행위를 통해 학생들의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줘야 할 의무가 있다. 교사의 수업 재량권이라는 허울 좋은 말로 교과서가 메워주지 못하는 삶과의 간극을 수업 안에서 다 해결하라는 말은 다소 무책임하게 들린다. 주어진 교과서를 재구성하여 수업을 하는 것은 응당 교사의 몫이지만, 배움과 삶을 어우러지게 하려면 교과서-수업-학생의 삶 사이에 반드시 어떤 연결고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정현 남목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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