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관계 제대로 주장하지 못하거나
증거 못대면 소송에서 질수밖에 없어
소장 잘 정리해 이성적으로 대처해야

▲ 김관구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필자는 현재 소액재판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소액재판이라고는 하나 소가가 3000만원 이하의 사건으로 당사자들에게 미치는 경제적 영향은 적지 않을 것이다. 소액사건의 경우 다른 재판에 비해 본인소송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소액사건은 소액사건심판법에 따라 몇 가지 특칙이 적용되는 등 간이한 절차에 따라 신속히 처리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다른 민사사건들과 마찬가지로 민사소송법에 따라 처리된다.

그런데 민사소송은 변론주의라는 대원칙에 따라 사건을 심리하고 판단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변론주의는 소송자료, 즉, 사실주장과 증거 수집·제출 책임을 당사자에게 맡기고, 당사자가 변론에 제출한 소송자료만을 기초로 삼아 재판을 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와 반대되는 원칙이 직권탐지주의인데, 소송자료의 수집제출책임을 당사자 아닌 법원에 지우는 입장이다. 변론주의를 민사소송의 대원칙으로 택한 연유에 대하여는 사적 자치의 반영, 절차보장, 공정한 재판에 대한 신뢰확보, 진실발견의 수단과 재판의 효율성 등 법철학적, 역사적 배경이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주요 선진국이나 문명국에서 예외 없이 직권탐지주의가 아닌 변론주의를 민사소송의 대원칙으로 삼고 있다.

변론주의를 달리 표현하면 자기책임원칙이다. 민사소송에서는 형사소송과 달리 실체적 진실이 아닌 상대적 진실만이 존재한다. 즉,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소송이지만 사실관계를 제대로 정리해서 주장하지 못하거나 이를 뒷받침할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면 패소판결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민사소송이다. 소액사건도 예외일 수는 없다. 따라서 본인 스스로 소송하는 사람들 역시 변론주의를 잘 이해해야 한다. 필자가 재판하면서 가장 난감할 때가 있는데, 당사자들이 법정에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 보는 것이다. 그러면 본인이 알아서 해야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 사람에 대한 편견이 있거나 도와주기 싫어서가 아니다. 법률에 그렇게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법원은 일반적인 행정관청과 달리 민원을 해결해 주는 곳이 아니라 둘 사이의 분쟁을 심판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신 이 지면을 빌어 본인소송과 관련한 몇 가지 조언을 드리고자 한다.

첫째, 소장이나 서면을 정성을 다해 잘 작성해야 한다. 미리 준비를 잘 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려면 잘 안 써질 것이다. 그럴 경우 6하 원칙에 따라 시간 순서대로 사건을 정리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작성한 서면은 본인과 제3자가 다시 읽어보면서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 주장인지 살펴보고 수정하는 것이 좋다. 이런 준비도 없이 법정에서 말로써 모든 것을 설명하겠다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법정에서 논리적으로 말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상당히 어렵다.

둘째, 감정적인 표현이나 상대방을 자극하는 표현은 삼가는 것이 좋다. 법원에 좋지 않은 인상을 줄뿐만 아니라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게 하고, 상대방을 자극해서 소송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려 사건 해결이 더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셋째, 소송하기 전에 증거를 잘 수집해서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모든 사실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하고 그것을 수집해서 제출할 책임은 본인에 있기 때문이다. 귀찮더라도 모든 거래의 경우 계약서 등을 작성해야 한다.

넷째, 조정에 적극 임해야 한다. 경제학에 매몰비용이라는 말이 있다. 과거의 일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이다. 손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거나 빨리 돈을 회수하여 새로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다섯째, 자신이 소송을 수행할 자신이 없으면 변호사 등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법률이란 상식적이기도 하지만, 고도의 전문적인 분야이기도 하다. 자신이 스스로 치유할 없는 병이 생기면 의사에게 치료를 받은 것이 자연스럽듯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분쟁이 생기면 법률전문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김관구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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