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어디나 고만고만한 마을벽화
마을의 특성·삶과 유리된 색채는
낡은 공간환경 되살리기엔 역부족

▲ 신선영 울산대 건축학부 겸임교수(색채학)

전국적으로 200곳 이상의 지역에서 도시재생과 관련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오래되고 낡은 마을 환경을 개선하고 재생하고자 하는 지역에서 손쉽게 접근하는 방법 중 하나가 마을 벽화 사업이다.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 대구 마미정 벽화마을, 부산의 감천문화마을 뿐만 아니라 울산의 신화마을, 장생포 고래마을, 슬도 마을에서도 유사한 색과 이미지의 벽화로 가득 채워진 골목길을 마주하면서 과연 이것만이 최선의 방법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지속가능한 거주환경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하고 우선 되어야 하는 것은 지역 주민을 배려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몇 해 전 공공디자인 사업으로 골목길 벽면 색채디자인을 한 적이 있다. 색채디자인을 구상하기 위한 기초자료 수집과 주변 환경 분석을 위해 해질 무렵에 사업 대상지를 찾아갔다. 어두운 골목 구석에는 몇몇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고, 좁은 골목길을 마주하고 있는 집들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만이 골목길을 비추고 있어서 사진을 찍는데도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다. 동네 주민들은 대부분 연로하신 어르신들이었고, 집집마다 내어놓은 많은 쓰레기더미와 생활용품들이 좁은 골목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골목길에는 가로등도 많이 없어 밤이 되면 외출도 꺼리신다고 하신 할아버지, 골목길 바닥면이 울퉁불퉁해서 길을 걷다 잘 넘어지신다고 하신 할머니, 비가 오면 빗물이 넘쳐 비가 많이 오는 날은 다니기가 무척 힘든 날이라고 하시는 아저씨, 하수구에서 악취가 나서 못 살겠다고 말씀하시는 아주머니, 정말 작은 동네였지만 불편한 것들은 모두 모여 있던 동네였다.

골목길 벽화라고 하면 떠오르는, 벽면에 온갖 이미지와 형상들로 가득 차 있는, 전국의 수많은 벽화마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들이 아닌 차별화된 디자인 계획안이 필요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사업현장의 거주환경을 직접 보고, 그곳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기 때문이다.

캔버스가 아닌 공간에 색을 칠할 때에는 보기에 이쁘고 좋은 색이 아닌 그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특성부터 확인을 하고 색을 사용해야 한다. 젊은 사람들이나 아이들은 시각적인 색채 인지가 빠르고 정확하지만 나이가 들면 눈의 망막도 같이 노화가 되어 흰색이나 회색과 같은 색채를 식별하는 능력이 저하된다. 그렇기 때문에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는 색채디자인은 고령자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명도조절에 유의해야 한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공장들과 높은 빌라 건물들로 인해 외부에서 마을을 제대로 볼 수도 없는, 낡은 단층주택들로 형성된 오래된 마을을 색채디자인을 통해 개선하기 위해, 밝고 생기있고 온화하면서 따뜻함이 묻어나는 색, 거주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심리적으로 불편함없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을의 특성을 반영한 색채 디자인을 하였다. 도색 작업을 할 때 우리 집 대문도 빨간색으로 지붕도 하늘색으로 칠해 달라 말씀하시던 아주머니, 악취가 난다는 하수구에는 향기가 나는 빨간 꽂을 그려 드렸더니 “하수구에서 향기가 난다”며 좋아하시던 어르신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색채는 공간환경을 개선하는 방법 중에서 최소화된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효율적인 수단이다. “색채는 형태에 비하여 더욱 강한 심리적 충격과 감정 또는 정서에 영향을 준다”는 형태 심리학 교수인 루돌프 아른 하임의 말처럼 색채는 인간행동과 사고 심리상태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인간이 생활하는 공간에 세심하고 체계적으로 적용된 색채는 인간의 긍정적 사고와 행동을 유도하고, 심리적 안정감과 감성적 충족감을 줄 수 있다.

제한된 공간을 지각하는데 있어 색채는 인간의 지각에 큰 영향을 미친다. 색채는 작은 공간도 큰 공간처럼 만들어 주고 의미없는 공간도 의미있는 공간으로 바꾸어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유명한 색채전문가 프리드리히 에른스트 폰 가르니에는 “색채는 빛입니다. 빛은 따뜻합니다. 따뜻함은 에너지입니다. 에너지는 생명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삶 그 자체는 바로 색채입니다.”라고 색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낡고 오래된 마을에 새로운 활기와 에너지 그리고 생명을 부여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색채디자인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신선영 울산대 건축학부 겸임교수(색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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