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285호 반구대암각화 전망대 양쪽에 통일신라~조선시대 누각 같은 것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 유적에 대한 추가 조사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유적은 반구대암각화 등 대곡천을 따라 조성돼 있는 일련의 역사문화콘텐츠의 연장선이라고 볼 충분한 이유가 있다. 따라서 국립문화재연구소와 울산시는 이번 발굴을 반드시 끝까지 진행할 의무가 있다.

1970년 12월24일 크리스마스에 동국대학교 문명대 교수 일행은 대곡천 일대에서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반고사 터를 찾고 있었다. 원효대사는 이 절에서 혁목암의 사부 낭지의 명을 받아 <초장관심론>과 <안신사심론>을 저술했다. 그런데, 문 교수는 이날 반고사 터 대신 천전리각석을 발견했고, 그 다음해 크리스마스에는 세계적인 유적인 반구대암각화를 발견했다. 반고사 터는 이후 고고·역사 학자들에 의해 집청정 맞은편 ‘대곡리 사지’로 추정됐다. 대곡박물관 신형석 관장은 “겸재 정선, 혹은 그의 손자 정황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언양 반구대’ 그림을 보았을 때 여러 채의 가옥은 바로 반구서원일 가능성이 높고, 이 반구서원은 반고사 터에 건립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에 발굴된 신라~조선의 건축물 유구는 대곡댐 상류에 있었던 화려했던 유물과 유적의 연장선에 있다. 두서·두동의 경주, 언양권, 울산권이 대곡천이라는 물줄기를 따라 형성한 문화축인 것이다. 이 대곡천은 하천이자 사람의 왕래를 가능하게 했던 문화교통로이기도 했다.

특히 이번 발굴조사에서 나온 석렬(石列:돌로 만든 경계)로 보았을 때 반구대암각화 전망대 인근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적지 않은 건축물이 있었을 것으로 연구사들은 판단했다. 특히 관청이나 궁궐, 사찰 등에 쓰이는 연화문 수막새 등이 나온 점을 감안하면 반구대 전망대 인근에는 암각화 주변 풍경을 감상하기 위한 누각을 세웠을 가능성이 높다고 연구사들은 말했다.

대곡천 일대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는 이제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백악기 공룡발자국을 비롯해 7000년전 고대인의 흔적, 역사시대 문화인물들의 숨결까지 대곡천의 콘텐츠는 무궁무진하다. 반구대암각화 주변에 대한 발굴이 절대 중단돼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특히 관광자원이 빈약한 울산에 대곡천은 전국에 내놓을 만한 보석같은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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