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켜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초혼, 김소월>

한해의 끝자락(歲暮)이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한 무리의 사슴이 운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슬퍼하는 것이 어디 사슴뿐이랴. ‘또 하루 멀어져 간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이순(耳順)을 목전에 둔 지금, 세모에 듣는 김광석의 비가(悲歌)는 지독히 처절하여 그 마음 그대로 내 가슴에 사무친다. 하루해 지는 것도 이렇듯 슬픔인데 통째로 저무는 한해를 바라보는 심정은 슬픔을 넘어 통한(痛恨)이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세상만물은 시간과 함께 변한다. 세모(歲暮)는 이 확연한 자연의 법칙(無常)을 체득하는 시즌이다. 우리 몸도 매일매일 변한다. 그래서 피부세포는 몇 주마다, 뼈는 3개월마다, 적혈구는 4개월마다 완전히 교체된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몸은 이렇듯 변하고 교체되지만 우리는 이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물리적으로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우리다. 뇌 세포는 수조 개의 연결을 끊임없이 형성하고 재형성하면서 새로운 나를 만들어 낸다. 내가 누가 될지는 온전히 나(我)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한 해의 마지막에 가서 그 해의 처음보다 더 나아진 자신을 발견하는 것’을 인생의 큰 행복이라 하였다.

나는 얼마나 나아졌는가. 올해도 마찬가지 조금도 달라짐이 없다. 조금도 나아짐이 없이 한해의 주기를 반복하는 것은 분명 슬픈 일이다. 어김없이 반복되는 똑같은 유형의 나를 해마다 경험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진정한 세모(歲暮)의 비가(悲歌)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겨울 해 넘어가는 서산을 바라보며 한 무리의 사슴이 운다. 시인이 다가와 이들의 어깨를 토닥거린다.

‘지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지지 않고 어떻게 해가 뜨고, 지지 않고 어떻게 너를 이길 수 있겠느냐.’<변산에서 쓴 편지, 정호승>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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