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재명지사 친형 강제입원시도를 보며
정신과 전문의로서 큰 아쉬움 느껴
이상행동 초기 제대로 진료 받았다면
환자와 가족의 큰 고통 덜었을텐데…
강제입원은 의사 대면진료 이후 결정
환자가 거부하면 치료할 방법이 없어
경찰개입 자살·폭력 시도후에나 가능
치료접근 문턱 낮출 방안 모색해야

검찰은 결국 이재명 지사의 친형 강제입원 시도에 대해 기소를 결정하였다. 한 달여 전부터 내밀한 증언들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뉴스기사만 보면 이 사건은 일견 가족 간의 막장드라마나 음모에 싸인 정치드라마로 보이지만, 선입견의 티끌을 손바닥으로 닦아내고 보면 의료제도의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는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들의 슬픈 자화상이 그대로 나타난다.

중앙일보는 11월30일 “보건소장, 감옥 갈 것 같다며 이재명 친형 강제입원 반대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제목만 보면 ‘강제입원의 적응증이 아니다’거나 ‘명백한 불법을 지시했다’고 단정하기 쉬운데, 상황을 잘 이해하려면 당시 사건과 우리나라 정신과 입원제도를 살펴봐야 한다.

우선 이지사의 형 재선씨(2017년 11월 사망)가 입원하기까지의 과정을 이지사측이 페이스북과 언론에 밝힌 내용과 보도된 자료를 토대로 간추려본다.

이재선씨는 회계사로 활동해오던 중 2012년 초부터 예전과 다른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성남시 공무원에게 잦은 폭언과 소란을 일으키더니, 5월부터는 집과 교회에 불 지르겠다고 협박하고 어머니에게 심한 말로 위협한다. 7월에는 어머니와 두 동생을 폭행하여 모두에게 2주 진단의 상해를 입힌다. 그 달에 새누리당 의총장에 난입하여 연행되고, 백화점에서 보안요원을 폭행하여 입원시키는 사건도 발생한다.

이재선씨의 갑작스런 행동 변화에 대하여 가족들의 판단과 대응은 갈라진다. 부인과 자녀는 강제입원을 반대하지만 어머니와 형제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정신과 진료를 받게 하려고 한다. 당시 이재명시장은 4월에 형의 폭언, 협박 등의 사례를 공무원들로부터 모으고, 성남시 정신건강센터장은 대면진료가 없었다는 한계는 있지만 조울병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서를 제출한다. 어머니는 4월10일에 정신건강센터에 정신과 진단절차를 요구하는 민원을 넣었으나 이후 조치가 없어서 항의하였고, 센터는 8월2일에야 시청에 진단과 보호를 신청한다. 시청은 자동적으로 보건소에 행정입원(시·군·구청장에 의한 입원) 절차를 진행하도록 지시하였으나 보건소장은 미룬다. 이후 그의 난폭한 행동이 줄어들자 이시장도 강제입원 시도를 포기한다.

이재선씨는 2013년 2월에야 정신과 치료를 시작하였지만 3월에 자살사고를 표현하고 교통사고로 큰 부상을 당한다. 이후 2014년 11월에 조울병 진단 하에 부인과 딸의 동의로 강제입원 된다.

위 과정을 살펴보면 큰 아쉬움이 남는다. 이상 행동 초기에 정신과 전문의 진료를 받았더라면 어땠을까? 만일 조울병으로 진단했다면 설득해서 외래진료를 할 수도 있고, 가족들에게 환자의 행동과 증상의 관계를 설명하여 갈등을 해소할 수도 있고, 정 안되면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 강제입원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어머니와 형제들이 민원을 넣고 이시장이 직권남용을 의심 받을 만큼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이재선씨를 정신과 전문의에게 데려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족 구성원이 정신질환이 발병하거나 재발하여도 본인이 거절하면 진료를 받게 할 방법이 없다. 정신보건법은 강제입원의 종류(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행정입원, 응급입원)와 요건을 정하였지만 환자를 어떻게 병원에 데려갈지는 규정하지 않았다. 절박한 상황에서 법의 공백은 상식으로 메워진다. 가족들은 친척들의 힘을 빌리거나 사설 구급대를 불러서 환자를 이송하였다. 이러한 관행의 부작용이 환자와 가족 간의 소송으로 불거지자 2001년 대법원 판결이 제동을 걸었다. 이 판결은 ‘환자를 정신과 전문의가 대면진료하고 정신의료기관의 장이 입원 결정을 한 이후에 비로소 저항하는 환자에게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즉 대면진료 후에야 대면진료를 위한 환자 이송이 가능한 셈이다. 판결은 이러한 절차가 여의치 않을 경우 대안으로 시·도지사에 의한 입원을 제시하였는데, 이마저도 대면진료 전에 강제 이송이 가능하다는 뜻인지 분명치 않다. 현실과 괴리된 대법원 판례 이후 정신질환자 치료 시작은 더욱 어렵고 혼란스러워졌다.

가족 중에 누군가 망상에 빠져서 현실 판단력을 잃어도, 문 닫아걸고 혼잣말을 해도, 가출해서 거리를 배회해도 본인이 거절하면 정신의료기관에 데려갈 방법이 없다. 법에 의하면 보호자가 공권력의 도움을 받아서 환자를 이송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 상황뿐이다. 환자가 자신이나 타인을 해칠 위험이 크고 상황이 급박할 경우에만 경찰과 구급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경찰은 이 조항을 좁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어서 자살 시도나 폭력이 발생한 뒤에야 개입한다. 병을 키워서 위기가 닥쳐야 치료 기회도 생기는 현실. 현재의 법체계로는 강남역 살인사건을 예방할 수 없다. 조울병의 조증 시기에 공공장소에서 과격한 언행으로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재산을 탕진해도 치료를 시작할 방법이 없다.

강제입원의 남용을 막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방법으로 해결하려다보면 더 큰 문제에 봉착한다. 경제성장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이룰 수 없듯이 인권보호를 환자 치료 접근 제한으로 이룰 순 없다. 강제입원 결정과 연장 기준을 엄격하게 하되 치료 접근 문턱은 낮추는 현실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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