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울주군 봉계버스터미널에서 언양방면으로 250여m를 가다 "황우쌀마을, 인빌(정보화마을)"이라는 입간판 오른쪽으로 나 있는 활천교를 지나면 경부고속도로 아래로 난 작은 굴다리가 나온다. 조금 더 올라가서 복안천을 지나는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꺾으면 나즈막한 배나무가 줄지어 있는 배밭과 함께 잘 정리된 논들이 이어진다.

 배밭을 지나 처음 나오는 버스승강장에서 왼쪽으로 90도 꺾인 외길을 따라가면 마을경로당을 비롯해 기와를 그대로 얹은 채 집을 개조한 농가 20여 채가 보인다. 경주이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신기마을이다.

 신기마을을 비롯해 차로 10분 이내 거리에 있는 음지, 양지, 활천, 복안, 미호, 내와, 차리, 구량 등 두서면 일대에는 경주이씨가 170여가구에 이른다. 이 가운데 신기마을에는 17가구가 살고 있다.

 울산에 경주이씨가 터를 잡게 된 것은 조선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후기의 유명한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4대손으로 한성판윤을 지낸 판윤공(判尹公) 지대(之帶·중시조 거명(居明)의 21세)는 단종 즉위년인 1452년 수양대군이 김종서, 황보인 등을 죽이고 안평대군을 강화도로 유배시키는 등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두서면 구량리로 내려와 은행나무를 심었다. 이 은행나무가 두서면 은행나무로 현재 천연기념물 제64호로 지정돼 있다.

 이어 지대의 후손인 태천공 경호(26세)의 셋째아들 상겸이 복안리에 자리를 잡은데 이어 32세인 흥만이 5촌 당숙인 동택을 따라 신기마을에 뿌리를 내렸다. 신기마을은 복안리 4개마을 중에서 가장 늦게 생긴 마을이다. 그래서 마을이름도 새로운 터라는 의미의 "신기"마을이다. 중시조는 원시조 알평(謁平)의 36세손인 거명이다. 계파로는 울산의 입향조인 판윤공파에 속하고, 신기마을의 입향조는 흥만이 된다. 현재 복안리 미호산 1번지에 입향조인 흥만의 산소가 자리하고 있다.

 경주이씨가 살고 있는 집의 안방에는 모두 익재공의 초상화와 원시조 표암공(瓢岩公) 알평(謁平)의 재실인 표암재(瓢巖齋·경주시 동천동) 사진이 걸려있다.

 신기마을에서 두서면 일대 문중일을 맡아보고 있는 이정우씨는 "경주이씨 화수회를 열 때 집집마다 초상화와 재실사진을 나눠줘서 신주단지 모시듯 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음력 3월 중정일이면 경주 표암재에서 제를 지내고, 매년 3월에는 종하체육관에서 경주이씨 한마음 단합대회를 갖습니다. 종하체육관이 37세손인 이종하가 울산시에 기증한 것이거든요. 또 매년 4월에는 두서면지역을 3개구역으로 나눠 돌아가면서 화수회를 열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신기마을에 가서 "우야"를 찾으면 웬만한 이름은 다 있다. 광우, 명우, 장우, 건우, 천우, 현우, 춘우, 상우, 성우, 혁우, 택우, 환우, 관우, 채우, 창우, 용우, 동우, 만우 등 중시조 거명(居明)으로부터 38세손의 돌림자인 "우"에 붙을만한 이름은 거의 다 붙여졌기 때문이다.

 이정우씨는 "경주이씨는 항렬을 철두철미하게 지키기 때문에 어딜 가든지 이름만 들으면 누구인지 알 정도"라며 "35세손부터 41세손까지 돌림자가 영, 규, 종, 우, 상, 형·희, 재"라고 설명했다.

 또 신기마을에는 명절이 되면 올해 여든 셋인 규탁(36세손) 옹과 서울에 살고 있는 세살 난 준형(40세손)군이 다같이 모여 4대가 한 자리를 이루기도 한다.

 이 마을에는 경주이씨가 열여섯 가구, 경주최씨가 3가구, 한씨와 권씨가 각각 1가구씩 살고 있는데 경주이씨와 경주최씨는 한 가족이나 다름이 없다. 입향조인 흥만의 고손자 규삼의 누나 신리가 경주최씨의 병수와 결혼하면서 사돈지간이 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수몰된 대곡댐 일대 잠방골이라는 곳으로 시집을 간 규삼의 누나가 병수와 함께 신기마을로 오면서 경주이씨와 경주최씨가 한동네 살게 된 것이다. 게다가 35년여 전에 이학이씨가 같은 동네에 사는 최석환씨와 결혼하면서 두 집안 사이가 더욱 가까워졌다.

 이지역의 특산물인 봉계황우쌀 마을로 불리는 두서면 복안리, 활천리를 비롯해 음지, 양지, 활천마을은 지난해 6월부터 행정자치부로부터 2차 정보화마을로 선정돼 모두 100여대의 컴퓨터가 보급돼 있다. 이 때문에 농사철이 아니면 마을 경로당에서 밥을 해먹거나 장기를 두던 동네 사람들이 저마다 인터넷을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여름방학철인 요즘은 춘해대학 멀티미디어학과에서 컴퓨터 관련 자원봉사를 실시하고 있다.

 현재 두북농협 조합장으로 있는 장우씨와 두북농협 직원 건우씨, 동구청 지역경제과에 근무하고 있는 광우씨도 신기마을 출신이다. 유난히 의사가 많은 것도 눈에 띈다. 울산시 중앙외과 원장인 명우씨, 또 명우씨의 아들 상문씨도 현재 서울대학교 의대에 재학중이다. 혁우, 상호, 상훈씨도 각각 서울, 청주, 수원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경주이씨와 사돈지간인 경주최씨 중에서는 북한 동포돕기와 인도 등지의 봉사활동으로 평화 및 국제이해 부문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법륜 스님(속명 최석호)이 신기마을에서 자랐다. 또 경상일보 최석복 기자가 최병수의 손자다. 박은정기자 musou@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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