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몰아치는 거친 물살에 놓인 정국
올해도 녹록잖은 현안에 싸여있지만
흔들림없이 혁신과 쇄신 지켜나가야

▲ 이재명 논설위원

새해를 한자로 신년(新年)이라고 한다. 새롭다는 뜻의 新(신) 자를 분석하면 도끼(斤:도끼 근)로 나무(木)를 찍으면 새순(立)이 올라온다는 뜻이다. 기해년 벽두에 서경(書經) 한 구절을 읽는다. “일신(日新)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 중국 은나라 탕 임금의 욕조에 새겨놓은 글이다. 김근 서강대 교수는 “여기서 새로움이란 어제와 다른 모습이 아니라 탕 임금이 처음에 품었던 마음을 뜻하며, 그는 시간이 지나며 그 마음이 변질될 것을 두려워했다”고 해석했다. 탕 임금의 도끼질은 나무를 끊임없이 찍어내 새 순을 올리려는 그 마음이다.

요즘 많이 쓰이는 혁신(革新)의 革(혁) 자는 ‘바꾼다’는 뜻이다. 동물의 생가죽을 피(皮)라고 한다면 동물의 가죽을 벗겨 가공한 것을 혁(革)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가죽과 털이 붙은 원초적인 것은 모피(毛皮)고, 가죽을 섬세하게 손질한 지갑, 핸드백 같은 것들은 혁이 되는 셈이다. 일례로 혁명은 하늘의 명(命)을 바꾼다(革)는 뜻이다.

쇄신(刷新)의 쇄는 ‘솔질하다’는 뜻이다. 쇄 자의 왼쪽 글자는 돼지 豕(시)의 고문(古文)이며, 오른쪽은 칼을 의미한다. 빳빳한 돼지털로 더러운 오물을 제거(刀)하는데서 ‘쇄신’이 나왔다. 제도나 인물을 바꾼다는 의미로 보면 혁신이나 쇄신이나 서로 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솔로 깨끗하게 털어내는 일 보다는 근본적으로 바탕을 바꾼다는 의미에서 혁신이 훨씬 선명하다.

지난해 말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했다. 임중도원(任重道遠),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이다. 공자의 제자 증자가 말씀하기를 “선비는 마음이 넓고 굳세지 않을 수 없으니, 맡은 일이 무겁고 길은 멀기 때문이니라”고 했다(논어 태백편). 무릇 나라를 운영하는 자는 그 맡은 일이 엄중하고도 무겁지만, 죽은 뒤에야 비로소 끝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도 우리는 짐이 무겁다. 정호승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물살이 센 냇물을 건널 때는 등에 짐이 있어야 물에 휩쓸리지 않고, 화물차가 언덕을 오를 때는 짐을 실어야 헛바퀴가 돌지 않듯이, 내 등의 짐이 나를 불의와 안일의 물결에 휩싸이지 않게 했으며 삶의 고개 하나하나를 잘 넘게 하였습니다”고.

남북간 평화와 비핵화, 혁신성장, 최저임금 인상, 일자리 전쟁, 경기퇴조···. 나라의 한복판으로 휘몰아쳐 가는 물살은 어느 때보다 빠르고 깊다. 국민들도 어느 것이 맞는지 어느 것이 그른지 헷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 같은 과오를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는 의지는 확고하다. 신년에도 혁신과 쇄신 두 단어는 흔들림없이 지켜져야 한다. 그 것이 새로움에 대한 탕 임금의 뜻이다.

울산도 인사 등 많은 것이 바뀌었고 부작용도 많았다. 그러나 취임 6개월의 울산시장에게 계속 실험을 하도록 하는 시민들의 아량은 남아 있지 않다. 비전을 선포하고, 치밀한 계획을 수립해 정직하게 그리고 힘있게 시정을 펴는 내공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 앞쪽으로는 적폐를 청산하면서 뒤로는 적폐를 쌓는 이율배반의 중심에서 헤어나지 않고는 시민들의 아량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지난 2008년 교수신문 사자성어가 호질기의(護疾忌醫)였다. 병을 숨기면서 의사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2014년 사자성어는 지록위마(指鹿爲馬)였다. 사슴을 말이라고 속이는 권세가들의 농락을 빗댄 말이다. 울산은 주력산업이 휘청거리고, 인사가 옆걸음을 하는 등 시청 내외의 병이 깊어졌다. 여기다 울산이라는 거대한 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고언을 해주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전국시대의 명의 편작이 도저히 고칠 수 없다고 말한 6가지 환자 가운데 하나가 ‘무당의 말만 믿고 의사를 믿지 못하는 환자’다.

정부나 울산이나 올해도 화두는 ‘혁신’과 ‘쇄신’이다. 올해도 벽두의 도끼 하나가 새 순을 돋아나게 할 것을 믿는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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