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기해(己亥)년 새해가 밝았다. 한 치의 어긋남도 허용치 않는 태양의 충직한 순환, 그 순환을 바라보며 우리는 높은 하늘의 힘을 깨닫는다. 그래서 새해 첫 일출(日出)의 장엄한 공간속에는 크고 작은 다짐과 소망(願)이 넘쳐난다. 소망은 설렘으로, 설렘은 적응의 과정을 거치며 우리의 삶을 더 아름답게 펼칠 것이고, 자기통제를 향한 굳은 다짐은 보다 나은 공간 속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소망과 다짐의 성공여부는 최적의 결정과 그에 따른 실천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최적의 결정을 내리는 합리적 결정자로 여긴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우리가 내린 대부분의 결정은 저절로 작동하는 시스템(직관)이 주관한다. 그러므로 사고와 행동이 즉흥적이며 반사적이다. 오류가 넘쳐난다. 즉각적 만족의 유혹(감정)과 자기통제(이성)는 패권을 놓고 싸우지만 대부분 유혹의 승리로 끝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직관을 확신하고 신뢰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목소리의 매력을 가진 요정 세이렌들은 절벽과 암초들로 둘러싸인 섬에 살면서 끊임없이 지나가는 선원들을 유혹한다. 이들의 목소리를 들은 선원들은 가까이 다가가다가 배가 난파되거나 스스로 물에 뛰어들어 죽음에 이른다.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귀향하는 전설의 영웅 오디세우스는 긴 여로의 어느 지점에서 자신의 배가 곧 이곳을 지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문제는 현재의 합리적인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하면 비합리적인 오디세우스가 될 터였다.

현명한 오디세우스는 이점을 분명히 알고 부하들에게 자신을 돛대에 단단히 묶을 것을 명령함과 동시에 부하들은 세이렌의 노래가 들리지 않게 귀를 막은 채 오디세우스의 애원과 몸부림을 깡그리 무시하고 노를 저어야 한다고 엄히 명령한다. 지금 정신이 멀쩡한 오디세우스가 미리 계획을 짜서 그릇된 행동을 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현재의 자아와 미래의 자아가 미리 합의를 하는 것을 ‘오디세우스의 계약’이라고 한다. 임의의 개인이 다음 순간 무엇을 할지 정확히 예측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크고 작은 다짐이 넘쳐나는 희망찬 새해다. 새해 몇몇 치명적인 다짐에는 오디세우스의 계약이 필요하지도 않을까.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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