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호 철학박사

2004년 봄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막 대학 학부를 졸업한 필자는 독일에서 새롭게 철학을 공부하길 원했다. 약 1년만에 독일어 시험에 합격하고, 브레멘 대학 학부 과정의 1학년 1학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입학의 기쁨도 잠시였다. 도대체 뭘 공부해야 할지 몰랐다. 너무나 많은 철학 책들이 내 어깨를 짖눌렀다. 그것도 독일어로 된 책들이.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뜻밖의 기회가 찾아 왔다.

그 해 여름, 브레멘대학 생물학과 교수인 롯(G. Roth)이 철학과 교수들과 토론회를 연다는 것이 아닌가. 롯이 누구인가. 뇌를 연구하는 생물학자로서 뇌과학적 실험 결과를 토대로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다는 주장으로 독일에서 대중적으로, 학술적으로 큰 관심을 끌고 있는 학자다. ‘자유의지’를 둘러싸고 생물학자와 철학자들이 토론을 한다니. 독일 친구들과 함께 토론회가 열리는 브레멘 대성당 옆에 위치한 ‘하우스 데어 비센샤프트’를 찾았다. 놀랍게도 꽤 넓은 홀은 브레멘 시민들로 꽉 차 있었다.

롯교수가 준비해 온 발표문을 읽었고 철학과 교수들의 질문으로 토론이 시작됐다. 나를 포함한 철학과 학생들은 질문을 할 기회도 얻기 힘들었다. 브레멘 시민들의 질문이 계속 쏟아졌기 때문이다. “자유의지가 없다는 과학적 증거가 또 있나요?” “당신이 말하는 자유의지란 정확히 어떤 뜻인가요?” “자유의지가 없다면 범죄자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뜻인가요?”… 콘서트를 방불케하는 그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 질의응답은 40여분이나 계속됐다. 그것은 바로 철학이 독일 사회에서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에 관한 생생한 목격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날 토론회의 주제였던 ‘자유의지’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주제였다. 철학적 주제에 답을 얻기 위해 현대 뇌과학과 생물학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점도 인상 깊었다. 철학은 이과가 아닌 문과에 속하지 않았던가. 적어도 내가 자랐던 한국 사회에서는 말이다. 2004년 여름 필자는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철학이 도대체 무엇인가?’ 그렇게 독일 브레멘에서 나의 철학공부는 자신의 무지함과 맞닥뜨리면서 시작됐다. 김남호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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