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채현 부산해운대경찰서 경위

올해부터 자치경찰제를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이후 단계적으로 전국으로 확대한다고 한다. 명분은 지방분권주의와 정치적 중립 차원이라고 한다. 여기에 덧붙여 수사구조개혁에 따른 경찰의 권력비대화 견제를 위한 포석이 깔려 있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인 듯하기도 하다.

검경의 수사구조개혁도 그렇다. 그렇게 태산을 뒤흔들 듯 요란스럽게 하더니 결국은 미미한 개혁에 지나지 않는 서일필이 되고 말았다. 수사권문제는 차치하고 좌우지간 경찰의 자치제에 대해 경찰 내부는 물론 일반시민들 사이에서도 우려하는 바가 크다.

경찰은 국가경찰과 지방경찰로 쪼개면서 소방은 지방직에서 국가직으로 한다고 한다. 소방의 국가직 전환 명분이 전국에 일률적인 소방행정을 제공할 수 있고, 소방관 또한 지역별 차등 없는 처우와 장비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지방분권주의에 배치되지만 소방은 국가직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논리라면 경찰은 전국에 일률적인 치안행정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아도 되고 지역별로 첨단장비도 제각각이고 경찰관의 처우 차등이 있어도 괜찮다는 해석이 가능한데 이렇게 극명하게 대립되는 이율배반적인 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특히 소방과 달리 경찰은 범죄의 광역화 기동화에 대응하기 위해선 전국단위의 일사불란한 대응을 위한 일원화 체제가 요구되는 조직이다. 각 지방경찰청과 각 경찰서 간의 신속한 공조도 필요하고, 지휘체계의 단순화도 필요하다. 효과도 일원화 체제일 때 극대화되는 것이다. 외국의 사례를 들어 비교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에게 맞는 것을 받아 들여야지 우리와는 입장이 다른 외국을 무조건 따라하자는 식의 논리는 옳지 않다고 본다.

정치적 중립문제도 그렇다. 중립문제는 각 지자체마다 정당도 다르고 따라서 성향도 다를 수 있어 제각각이 될 수 있다. 중립의 문제는 운영하는 사람의 의지나 투명성과 같은 감시체계의 문제이지 지자체로 된다고 해서 정치적 중립일 수 있다는 것은 공감이 가지 않는다.

지자체여야만 민주적이고 지역 실정에 맞는 주민친화·밀착행정이라는 단순히 이론에 근거한 기대심리도 그렇다. 같은 민족이면서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문화를 가진 작은 나라에서 지역실정 주민밀착 운운하는 것도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공권력 경시풍조만 심화될 것이고, 각 지방 토호세력과의 유착이나 자치단체장의 정치색에 휘둘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우리나라의 자치제는 중앙정부로부터 지방정부가 완전히 독립된 자치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기능에 따라서 중앙정부에 모든 권한이 있을 수도 있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분담내지는 지방정부에 모든 권한이 있을 수 있는 그게 우리의 현실에서는 더 잘 맞는 자치제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영미국가와 같이 독립국가 연합도 아니고 주 헌법이 있고 외교권까지도 주 정부에 있는 나라와 다르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이 아닐까?

지난달 강릉선 KTX 탈선사고가 발생하자 철도건설을 맡았던 철도시설공단은 부실한 유지보수가 원인이라고, 철도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코레일은 시공에 문제가 있었다고 서로 네 탓 공방을 벌였다. 또 이낙연 국무총리는 “철도시설 건설은 철도시설공단이 맡고, 시설 유지보수는 철도공사가 시행하는 이원구조는 근본적 비효율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원화구조의 문제점을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경찰을 이원화시키는 것은 업무분담의 한계에 따른 마찰과 혼선은 물론 원활한 공조가 어려워 질 것이다. 아울러 책임 떠넘기기와 업무의 중복으로 인한 전체 경찰의 총량만 더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불요불급한 ‘자치경찰제’ 우리의 여건에서 합리적인가 필요한 것인가 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본다. 분권주의 그 자체가 목적이 되거나 권력분배 차원의 잣대에 포커스가 맞추어져서 추진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국민들은 정치논리나 지방분권의 형식보다는 공공의 안녕을 위해 강력한 공권력, 안정된 치안을 더 원한다고 본다.

김채현 부산해운대경찰서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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