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태호 동국대 교수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대한민국 국민의 얼굴인 여권이 새 모습으로 바뀐다.

칙칙한 진녹색의 표지가 산뜻한 남색으로 바뀌고 태극문양을 양각으로 새겨 넣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외교부와 공동으로 여권디자인 공모전을 주관해 당선작을 선정하고 공공디자인위원회를 거쳐 차세대 전자여권 디자인을 확정했다.

외국 출입국시 사증을 받아야 하는 속지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양을 새겨 넣었다. 여기에 반구대 암각화가 중심에 들어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반구대 암각화의 가치를 모르고 지내왔다.

반구대 암각화가 발견된 울산광역시 울주군 대곡천은 전세계에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유적의 보고다. 대곡천 물길이 흐르는 곳마다 공룡의 발자국이 남아있다. 신석기 시대로 추정되는 선사인은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고 자신들의 생활상을 석벽 위에 새겨놓았다.

어디 이것뿐인가? 고대 신라 화랑들은 유곡을 오르내리며 심신을 수련하면서 삼한일통의 꿈을 다졌고, 왕족에게 이곳은 즐겨 찾던 휴양지였다. 물길이 굽이치는 곳마다 고려와 조선의 선비들이 수려한 풍광 속에서 학문을 논하던 자취가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문화유산의 보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10월 울산을 강타한 태풍 콩레이는 반구대 암각화를 탁류 속에 수장시켜 때마침 대곡천 암각화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초청 연사인 장류익 르 껠렉 프랑스국립아프리카 연구소장은 “선사인이 직접 세계인을 울산으로 불러들였다. 소중한 유산을 보기 위해 수개월을 고대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니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1971년 문명대 교수에 의해 비로소 세상에 알려진 암각화는 사연댐의 수위에 막혀 홍수가 지면 어김없이 수장되곤 했다. 사연댐은 1967년에 울산국가산단에 공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대곡천의 물길을 막아 축조했다. 주변에 무슨 문화유적이 있는지 조사할 겨를도 없었다. 수출만이 살길이었던 당시 상황에 만약에 반구대 암각화가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댐 건설은 막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2003년 사연댐이 울산시민들에게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수원으로 전환되던 시점에도 적극적으로 대곡천의 수장을 막지 못했다. 울산이 공업도시에서 역사문화도시로 환골탈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우리는 대곡천이 지니고 있는 가치에 대해서 무지했기 때문에 탁류에 훼손되는 유적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대한민국호는 울산의 희생을 통해 세계 10위권에 드는 선진국가로 성장했다. 그 이면에는 대곡천의 희생이 있었다. 대곡천은 울산이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도시임을 웅변으로 말해 주는 실존하는 현장이다.

이제 국가는 울산의 희생에 보답해야 할 때이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원초적인 책임은 국가에 있다. 정부는 조속히 국토의 물관리를 일원화하여 울산시민들의 생활용수 공급에 지장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올 해부터라도 국가가 나서 더 이상 암각화의 수장을 막아야 한다.

아울러 대곡천 일대의 원형 회복 계획을 수립하고 조속히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도록 행정 역량을 집중하여야 한다. 더 이상 암각화를 탁류에 가두지 말라는 선사인의 외침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강태호 동국대 교수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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