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말모이’ 한 장면.

9일 개봉 박스오피스 1위 올라
주연 윤계상이 분한 류정환
최현배 선생 떠올리게 해

조선어학회 사전 편찬 과정등
험난했던 지난 시절 보여주고
실제 기록사진도 등장해 눈길

9일 개봉한 영화 ‘말모이’가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영화장면 곳곳에는 울산출신 국어학자 최현배(1894~1970)의 한글사랑 이야기가 녹아있다. 울산을 중심으로 각종 SNS를 통해 뜨거운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말모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을 만들자며 사투리를 포함한 전국 각 지역의 우리말을 모으고, 분류하고, 정의하는 운동이었다. 영화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상황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우리말사전을 편찬한 선각자들 이야기를 들려준다.

▲ 영화 속에 등장하는 조선어학회 기념사진. 맨 앞줄 한가운데(왼쪽 다섯번째)가 외솔 선생.

주연배우 윤계상이 연기한 ‘류정환’은 가상의 인물이다. 어느 특정인물을 비정하지도 않는다. 말모이와 사전편찬을 주도했던 조선어학회 회원 다수의 발자취를 ‘류정환’이라는 한 인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솔의 고향 울산과 외솔의 몸담았던 국어학계 전반에서는 영화 속 주인공을 삶을 외솔의 그 것과 견주어 이해하는 이들이 적지않다. 외솔 최현배는 일제강점기 말모이를 주도한 조선어학회를 창립했고, 광복이후에도 조선어학회의 후신인 한글학회를 이끌어 사전편찬을 완간했기 때문이다.

영화 속 배경은 1930년대부터다. 하지만 실제 말모이는 주시경과 그 제자들로 구성된 조선광문회가 1911년부터 시작됐다. 그 결과 모아진 우리말은 아쉽게도 원고로 묶어졌을 뿐 사전 출간까지는 이어지지 못한다.

▲ 총 6권으로 구성된 <큰사전>

그때 만들어진 초기 원고는 이후 조선어학연구회(조선어학회의 전신)로 넘겨졌고, 이를 바탕으로 조선어사전편찬회가 1929년부터 다시 사전 편찬에 들어간다. 은밀하고도 대대적인 또한번의 말모이 작전이 펼쳐지고, 학자들의 연구를 거쳐, 1942년 드디어 사전의 초고가 완성된다. 하지만 인쇄 직전, 일제의 탄압으로 ‘조선어학회 사건’이 발생, 외솔 최현배를 비롯한 많은 관계자들이 옥에 갇히고 원고까지 빼앗긴다.

어둠의 나락에서 모두가 좌절해 있을 때, 1945년 해방과 함께 한 줄기 희망의 빛이 피어났다. 외솔 등이 감옥에서 풀려나고, 사라졌던 원고가 실제로 경성역(서울역)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1947년 처음으로 <조선 말 큰사전> 1권이 나왔다. 조선어학회는 이후 한글학회로 이름이 바꾸었고, 사전 제목도 <큰사전>으로 이름을 바꿔 1957년까지총 6권을 출간하게 된다.

▲ 말모이 원고본

당시 한글학회 이사장을 맡고있던 외솔 최현배는 <큰사전>의 끝부분에 ‘큰사전의 완성을 보고서’라는 제목으로 이런 글을 남겼다. “우리가 이 사전의 완성을 기뻐함은, 그것이 배달 겨레 역사상 처음으로 이뤄진 문화 공탑인 때문이요….”

영화 ‘말모이’는 ‘류정환’(윤계상)을 통해 이와같이 지난했던 과정과 함께 그 시대를 보여주는 실제 사진도 보여준다. 해당사진은 흑백으로, 1935년 1월 세조대왕비각(온양)에서 촬영한 조선어학회 사전편찬위원회의 단체사진이다. 사진 속 제일 앞줄 한가운데(왼쪽 다섯번째)에 젊은 날의 외솔 최현배가 앉아있다.

현재 각종 포털사이트와 SNS에서는 ‘손꼽아 기다린 영화, 개봉 첫날인 9일 조조영화를 관람했다’ ‘울산과 부산 사투리를 구분해야 한다는 장면이 나온다’ ‘현존 3000개의 언어중 고유사전을 갖고있는 언어는 20개뿐. 그 중 하나가 국어다. 한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등의 관람평이 이어지고 있다.

김구한(울산대 아산리더십연구원 교수) 외솔최현배선생기념관 운영위원은 “지난 연말 국립한글박물관에서는 영화 속 스토리를 뒷받침하는 ‘사전의 재발견’ 특별전이 진행됐다. 이를 외솔의 고향, 한글도시 울산으로 유치해 시민들이 공유하는 기회를 마련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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