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거진 ‘삼고무 사태’ 접하며
생존에 허덕이는 문화계 단면 보는듯
전통예술계 인본주의 상실 경계해야

▲ 현숙희 무용가·전 영산대 초빙교수

“평양 공동선언 1주년을 기념해 오는 9월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방탄소년단(BTS)이 출연하는 콘서트를 진행한다.” 국회 문화체육관광 위원장이자 더불어민주당 남북문화 체육협력특별위원장인 안민석 의원은 지난 연말 BTS측에 콘서트 출연 제안과 일정조정 가능여부를 문의했다면서 소속사 측에 구체적 제안을 건넨 사실도 알렸다.

방탄소년단은 미국 빌보드차트 1위로 한국 K-POP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알려 국가적 공헌을 한 그룹으로 지난해 최연소 화관문화훈장을 수상한 바 있다. 평양에서의 방탄소년단의 공연이 이뤄진다면 세계에 한반도의 평화무드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하는 분위기도 생기고 있다. 세상이 참으로 변한 것인가.

어릴 적부터 무용을 하면서 대중문화와 예술문화의 경계가 확실하다고 인식하면서 성장해온 필자의 시각으로는 이런 한류 열풍이 뜻밖으로 보여진다. 민간친선외교 문화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부채춤, 봉산탈춤, 태평무, 삼고무 등등이라는, 시대에 뒤처지는 사고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해 12월1일 ‘2018 멜론 뮤직어워드’에서 놀랍게도 제이홉의 삼고무, 지민의 부채춤, 정국의 봉산탈춤과 북청사자놀음으로 이어지는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BTS가 전세계 팬들에게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를 알리고 소개하는 진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삼고무와 오고무는 수십 명의 무용수가 양옆과 뒤편의 북 세 개나 다섯 개를 일사분란하게 두드리는 군무로 스펙터클이 압권인 춤이다. 그런데 BTS가 보여준 이 춤들이 창작물일까, 문화유산일까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라 일파만파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민속무용으로 널리 알려진 삼고무와 오고무의 사유화 논란인 셈이다.

삼고무나 부채춤이나 근대이후 외국무용의 자극을 받아 전통을 변형시킨 ‘신무용’으로 통한다. 그런데 ‘2014년 김백봉류 부채춤’은 평안남도 무형문화재로 등록되었다. 당시 신무용을 전통춤으로 볼 수 있냐는 논란이 있었지만 문화재보호법이 근대문화유산까지 포괄하는 만큼 신무용도 미래의 전통이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이에 반해 삼고무와 오고무는 문화재 대신 저작권 등록을 택했다. 우봉 이매방(1927~2015) 선생 유족측은 이매방 본인의 생전인터뷰를 근거로 삼고무와 오고무, 대감놀이와 장검무 등 4가지 춤을 개인의 창작물이라며 저작권 등록을 마쳤다고 한다. 반면 이매방의 제자들로 구성된 우봉이매방춤보존회측은 당대 춤꾼들이 함께 만들어간 공동 창작물이라며 ‘전통 무형문화유산의 사유화를 반대한다’며 청와대국민청원을 올리는 등 반발하고 있다. 삼고무와 오고무가 독무인 전통춤 승무를 응용해 근대에 창작된 군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으나 사유재냐 공공재냐의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보존회 측은 이매방아트컴퍼니가 국립무용단의 대표 레파토리 ‘향연’의 작년 공연에 대해 900만원의 저작권료를 청구한 것이 영리추구의 시작을 알리는 증표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사회 붕괴를 연구하는 저술가인 드미트리 오를로프는 사회 붕괴 과정을 5단계로 분류한다. 1단계가 금융 붕괴, 2단계가 상업 붕괴, 3단계는 정치 붕괴, 4단계는 사회 붕괴, 5단계가 문화 붕괴인데 여기에 이르면 인간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다고 했다. 문화붕괴는 곧 믿음과 신뢰의 붕괴인 것이다. 희소한 자원을 놓고 개인들은 경쟁을 벌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경제 불황이 계속되면서 개인의 이익이 다른 가치를 압도하고 타인을 이겨야 내가 산다는 생존의 압박으로인해 시민성과 인간성 상실의 붕괴를 맞게 된다.

이번 ‘삼고무 사태’도 다르지 않다. 가치를 잃고 생존의 바닥에서 허덕이는 문화예술계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삼고무 사태를 통해 전통춤 문화유산의 저작권 등록이 타당한가의 숙제도 풀어야 하지만 붕괴되고 있는 전통문화 예술계의 인본주의 상실도 경계해야 한다. 얼마 있지 않으면 울산도 문화예술계 큰 단체의 수장을 뽑는 선거일이다. 투표권을 가진 문화예술인의 숙제가 남았다.

현숙희 무용가·전 영산대 초빙교수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