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목 울산박물관 관장·고고학 박사

2007년 프랑스 학술지 <인문과학 Sciences Humaines>은 인류 문명의 기원을 주제로 특집호를 발간했다. 아시아권에서 한국의 신석기와 반구대암각화가 유일하게 다뤄졌다. 문명사를 다루는 저작물에서 흔히 중국이나 인도가 비중 있게 기술되고 있음을 보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2015년 프랑스에서 발간된 <우리 기원들 속에 혁명 Revolution dans nos origines>이란 책에서도 이 주제가 다시 다뤄졌다.

우리나라 고고학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중석기(mesolithic)라는 시대개념이 있다. 구석기(paleolithic)와 신석기(neolithic) 사이에 있는 시기를 말한다. 마지막 빙하가 물러가고 차츰 기온이 따뜻해지면서 초원이 산림으로 바뀌자 매머드 같은 대형동물과 순록같이 무리동물이 사라진다. 순록의 시대로 불리던 구석기문명이 종말을 맞았다. 사람들은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새로운 생존전략이 필요했다. 중석기시대 작고 빠른 동물을 사냥하는 활이 발명되었고 개가 동반자로 길들여지고 다양한 식량자원을 개발하는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졌다. 신기술로 인해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세계 여러 지역에서 정주문화가 뿌리를 내렸다.

선사학자 워시번(D. K. Washburn)은 인류사 대부분의 시간 물리적이고도 심리적으로 가장 큰 장애였던 바다가 개척되면서 중석기시대 해양어로 사회가 출현했다고 보았다. 라밍-앵뻬레(A. Laming-Emperaire)는 이미 수몰해버린 최고의 해안유적은 사라졌지만 해안가에 분포하는 패총들이 중석기시대 이주의 물결을 보여준다고 했다. 고환경 연구에 따르면 약 1만5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에 해수면은 지금보다 약 120~150m 낮았다.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차츰 상승해 약 6000년 전 현수위로 안정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중석기시대는 해수면 상승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 해양어로 문화가 꽃피웠을 수도 있지만 당시 해안은 대부분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떼스타(A. Testart)는 중석기시대 물질자료의 빈약함은 해수면 변동이란 전 지구적인 현상에 기인한다고 했다. 6000년 이전 해양어로 문화와 관련된 고고학적 자료는 세계적으로도 극히 희소하다는 것이다. 떼스타는 반구대암각화 그림을 보고 중석기 문화의 산물이라고 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7000년 전 우리 선조들이 남긴 반구대암각화가 아시아권의 그 어떤 문명보다 중요하게 고래와 연어로 상징되는 해양어로 문화의 기원(origine)으로 다뤄진 것이다. 이미 고인이 되신 민속학자 김열규 교수는 경주의 모든 문화재를 통틀어도 반구대암각화와 바꾸지 않겠다는 어록을 남겼다. 선사학의 관점으로 보아도 그의 찬사가 전혀 과장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상목 울산박물관 관장·고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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