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우연히 떠나게 된 히말라야행
고봉준령 기슭에 이어진 삶의 현장 보며
대자연 앞에선 인간 모두가 평등함 느껴

▲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지난 연말연시 12박13일 일정으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다녀왔다. ‘나이를 더 먹으면 갈 기회가 있겠느냐’고 하는 지인의 권유에 따라 동참하게 되었는데, 가끔 모험적 일은 우연한 계기로 하게 되는 것 같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로 들어가 제2도시 휴양지 포카라를 거쳐 귀국하는 여정으로, 카트만두에서 자동차로 10여시간 걸리는 베시사하르 인근 해발 1430m 참제에서 시작하여 해발 5416m의 쏘롱라 고개를 넘어 힌두교 성지 묵티나트를 거쳐 해발 2720m 좀솜까지 약 100여㎞를 8일 동안 걸었다. 해발 8000m 넘는 히말라야 14좌 가운데 하나인 안나푸르나 제1봉(8091m)을 비롯한 안나푸르나 산군을 가운데에 두고 바라보면서 남동쪽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올라가 북서쪽으로 내려오는 AC(Annapurna Circuit)코스다. 밀림협곡, 고산지대, 숲과 초원 등을 오르내리면서 고도를 높여 만년설산, 빙하와 호수, 계곡과 강, 사막과 고원 등 다채로운 풍광을 감상했다. 대자연이 연출하는 파노라마를 보는 것이다.

여행사 기획의 프로그램 참가자는 부부 3쌍을 비롯하여 총 15명으로 필자 등 두세명을 제외하고는 고산 트레킹 유경험자들이었다. 필자도 평소 등산을 자주 다녀 산길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포터들이 짐을 상당부분 운반해 주고 한국음식도 제공되었지만 1주일 넘게 난방없는 롯지에서 자고, 걷는 것은 힘들었다. 위도상 아열대지역이지만 고도 상승에 따른 기온 하강이 있고, 트레킹 최적기(4월 또는 10월말 11월초)가 아닌 12월 엄동설한이라, 밤에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 겉옷을 입고 오리털 침낭에 들어갔으나 핫팩을 손에 쥐거나 뜨거운 물을 담은 물통을 안아야 잠잘 수가 있었다.

트레킹 중에 세찬 바람으로 만들어진 흙먼지를 뒤집어 썼음에도 저체온증의 위험때문에 씻지 못하고, 물휴지로 대충 닦고 먼지 상태로 며칠 밤을 잤는데 역시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 같다. 다행히 고도가 높아질수록 숨이 다소 차고, 뒷머리가 띵한 것 외에는 고소증을 겪지 않았으나 냉기를 차단하는 중등산화, 두꺼운 털장갑 등을 준비하지 않아 마지막날 새벽 3시에 출발하여 헤드랜턴의 불빛에 의존하여 5416m의 쏘롱라 고개를 넘을 때 손발이 꽁꽁 얼어 추위에 떨었던 일을 떠올리면 역시 모든 일에는 철저한 준비가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산 트레킹은 매일 10㎞ 이상 산길을 걸을 수 있는 체력, 3000m 이상에서 견딜 수 있는 건강과 고소증에 대한 대비,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장비 및 방한이 필수적이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여정을 마치고자 하는 꿈과 열정, 용기가 있어야겠지만.

멀리 안나푸르나 산군은 만년설에 덮여 눈바람이 날리고, 햇빛에 반사되어 코발트불루 하늘과 대비되어 신비감을 자아내었다. 거대한 산은 인간의 발길을 허용하였지만, 한 순간일 뿐 언제나 고고하게 인간 세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고봉준령, 험준한 산의 옆구리에 나 있는 산길과 끝없이 흘러내리는 계곡과 강, 4000m 높이까지 만들어진 계단식 논, 수㎞마다 나타나는 산기슭의 마을과 산중턱에 세워진 라마교 사원과 불탑, 가파른 산등성이에서 풀을 뜯는 야크와 염소,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의하여 끝없이 흩날리는 흙먼지, 드문드문 지나가는 사람들, 오토바이, 자동차 등등. 자연과 인간 그리고 역사와 현재 삶이 어우러진 장대한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었다.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황금돼지해를 맞으면서 세속을 초월한 듯한 공간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였다. 고산 롯지에서 연결되는 와이파이로 많은 분들에게 히말라야 기운과 함께 새해 인사 메시지를 보냈다. 반응이 뜨거웠다. 대자연 앞에 설때 인간은 나약하고, 모두가 평등하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