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대옥 무거중학교 교사

방학이다. 지금쯤 대부분 부모들이 아이들과의 오붓한 시간을 힘들어 하기 시작했을 것 같은 방학 중반이다. 아이들은 방학 때 학원을 다니느라 더 바빠질 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면서도, 방학 무렵이 되면 꽤나 들떠 있기 마련이다. 학교 다닐 때보다 늦게 일어 날 수도 있고, 평소 보다 게임도 더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며 좋아한다. 또 작은 일탈인 헤어스타일 바꾸기를 시도하기도 한다. 펌을 해서 머리를 구불거리게 하는 아이가 있는 가하면, 또 펌을 해서 머리를 펴는 아이도 있다. 제 각각 학교가 요구하는 틀에 맞춰 있던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해 뭐라도 하나 쯤, 일탈 아닌 일탈을 원한다. 방학에만 누릴 수 있는 그 무엇을.

그렇다. 아이들에게 방학은 ‘해방’의 기회이다. ‘해방’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구속이나 억압, 부담 따위에서 벗어나게 함’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아이들에게 학교는 시간을 구속하고, 복장을 억압하고, 학업의 부담을 지우는 곳이다. 그래서 일 년에 두 번 30일에 가까운 이 해방의 시간이 아이들에게는 다음에 다시 견뎌 내야하는 시간들에 대한 ‘포션’­온라인 게임에 나오는 한번 마실 만큼의 마법의 물약­일지 모르겠다.

그런데 부모가 기대하는 방학이란 아이들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학원 가느라 못했던 밀린 운동도 좀 했으면 좋겠고, 진도 따라가느라 놓쳤던 영어 문법 복습도 했으면 좋겠고, 긴 겨울 방학에 수학진도를 확실하게 빼놓고 싶고, 남들 다 한다는 데, 우리 아이만 안 했던 그 국어 수업도 좀 했으면 좋겠고…. 30일 안에 빠짐없이 이것들을 채우려니 방학 직전까지 학원가에는 방학특강을 신청하려는 어머니들 상담이 줄을 잇는다. 결국 부모에게 방학이란 ‘미션(mission)’인 것이다.

그러니 싸울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계속 해방을 위한 ‘개김 투쟁’­명령이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버티거나 반항하다­을 하고, 부모들은 미션 수행을 위한 잔소리 폭격을 퍼부을 수밖에 없으니 방학은 결국 ‘전쟁’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전쟁이라는 것의 속성이 늘 그렇듯이, 승자라 할지라도 큰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방학다운 방학을 보내지 못하고 학교로 돌아와 못 다한 ‘개김 투쟁’을 이어간다. 학부모들은 아이와 눈 한번 맞춰보지 못하고, 아이와 함박웃음 한 번 나누지 못한 채, 아이들을 품을 얼마 남지 않는 시간을 모두 놓쳐 버리고 만다.

방학이다. ‘放(놓을 방), 學(배울 학)’을 쓰는 말이다. 다가올 입시가 무서워 어떻게 공부를 다 놓을 수야 있겠는가. 하지만 ‘놓았다’라는 기분이 드는 해방의 날을 아이들에게 단 며칠이라도 줄 수는 없을까. 우리 인생에 어딘가에 ‘­적’을 두고 당당하게 그 일을 놓을 수 있는 날이 학창시절 말고 또 있는 지 한 번 생각해보자. 지금 놓아 보지 않으면, 나중에 더 버티지 못하고 ‘놓치게’ 될 지도 모른다. 꼭 붙들어야 할 것은 학원진도가 아니라 아이들의 꿈이다.

방학이 절반 쯤 남았다. 미션을 수행하는 영도자가 되기보다는 ‘밥 잘해 주는 예쁜 엄마’가 되는 기회를 꼭 가졌으면 한다.

강대옥 무거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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