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인권보호 내세우면서
정신질환자 치료받을 권리 막고
가족들 불법행위로 내모는것 위선

▲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유난히 추운 겨울이다. 연말 정신과 진료실에서 벌어진 비극은 가슴을 시리게 한다. 요즘 내원한 분들은 나의 안전을 염려하는 인사를 건넨다. 작년 한 해, 정신질환자에 의한 사건 사고가 유난히 많았다. 환자의 부모, 형제, 이웃뿐 아니라 경찰과 정신과 의사도 희생되었다.

보건복지부가 사건 이틀 후 급히 배포한 의료인 보호방안을 보면 응급실뿐 아니라 일반 진료현장에서의 폭행 방지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계류 중이라고 한다. 이 법안은 가해자의 처벌을 강화하고 심신미약자의 형 감경을 배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흔히 보던 응급실 폭력과는 성격이 다르다. 망상 등으로 현실 판단력이 손상된 환자의 범행은 처벌을 강화한다고 막을 수 없다. 진료실 내 대피통로나 비상벨 설치도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일반인보다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조현병 등 중증 질환의 경우 단서가 붙는다.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가? 불행히도 우리나라에서는 심각한 정신병이 생기거나 재발하여도 치료를 시작할 방법이 없다. 나는 이 문제를 본보 칼럼에서 반복해서 제기해왔다. 칼럼 ‘경직된 정신보건법이 사회안전망을 흔든다’(2017.1.20.)에서 정신병이 재발한 환자를 병원에 데려오지 못하는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하였고, 사회적 이슈 때마다 ‘정신질환 치료의 사각지대’(2018.7.20), ‘조울병과 강제입원’(2018.12.21) 등에서 다시 설명하였다.

현재 우리나라 정신의료제도의 창틀은 멀쩡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유리 두 개가 없어져 휑하니 뚫려있다. 첫 번째 공백은 2001년 대법원 판결에서 비롯되었다. 자신의 병을 인식하지 못하는 정신질환의 특성을 도외시한 채 정신과 전문의 대면진료 전에는 환자에게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이로써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를 병원에 데려갈 방법이 없어졌다. 매년 시행되는 수만 건의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보호입원) 중에 인권침해 사례가 있다고 보호자의 환자 이송 방법을 차단한 것이다. 오점을 닦아낼 방법을 고민하기보다 아예 유리창을 떼어낸 셈이다. 이젠 응급상황에만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정신질환이 심각해도 응급상황 전에는 치료를 시작할 수 없는 시스템은 세계에 유례가 없다. 이대로라면 사회 혼란을 넘어 국가 위기를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중대한 문제가 어떻게 오랫동안 불거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비결은 국가의 묵인과 방조에 있다.

절박한 상황에서 가족들은 어떻게든지 환자를 병원에 데려왔다. 예전처럼 가족 여러 명이 억지로 데려오거나 사설 구급대를 이용하였다. 모두 불법이다. 하지만 일단 치료를 받고 망상이나 조증에서 회복되면 환자는 대개 자신의 병을 깨닫게 되므로 나중에 소송으로 번지는 일은 거의 없다. 드물지만 소송이 발생하면 국가는 짐짓 현실을 모르는 척 강제이송을 문제 삼아 처벌한다. 오히려 이를 계기로 두 번째 공백이 생겨났다. 정부는 인권보호를 강화한다며 2016년 정신보건법을 개정하여 입원기준을 비현실적으로 까다롭게 만들었다. 치료가 필요해도 위험성이 인정되어야 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다.

국가가 투명한 인권보호를 내세우면서 정신질환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막고 가족들을 불법 행위로 내모는 것은 위선이다. 국민은 언제까지 참아야 하나. 이제라도 의료 공백을 해결하려면 경찰 등 공권력이 도와줄 요건과 절차를 마련해야 하는데, 복지부의 대응방안을 보면 뚫린 창문을 내버려두고 창틈만 메우는 것 같다. ‘정신과적 응급상황 대응 매뉴얼’은 말 그대로 응급상황에만 한정되고, ‘퇴원 환자 관리 강화’는 구체적 방법이 없으며, ‘외래치료명령제도 강화’도 역시 보조적 수단일 뿐이다. 이런 방법들의 한계는 기존 사건을 지금의 현실에 적용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조현병으로 4회 입원 치료를 받은 34세 남자. 그는 증상이 악화되면 여성들이 자신을 견제하고 괴롭힌다는 피해망상을 드러낸다. 환자는 퇴원 후 약물치료를 중단하고 두 달 후 가출하여 씻지도 않고 건물 계단에서 쪽잠을 자며 지낸다. 이번엔 다른 사례. 조울병으로 3년 전 20일간 입원치료 뒤 치료를 중단한 30세 남자. 그는 머리에 폭탄이 설치되었다고 주장하는데 가족들은 두려워서 떨어져 살고 있다. 가족들이 이들을 치료 요청한다면 국가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정부의 답변이 궁금하다.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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