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탑골공원이다. 원각사지 십층석탑 앞을 서성이며 한 여자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 도심에서 사람을 만나기에는 이만한 장소가 없다.

12m의 까마득히 높은 탑 위로 파란 하늘이 언뜻 보인다. 국보 제 2호인 거대한 대리석 탑은 유리장안에 갇혀 박제가 되어 버렸다. 산성비와 먼지를 피하기 위해서다.

정조 임금 시대, 조선은 문예 부흥기였다. 한양은 도시의 기틀이 잡혀 운종가는 활기로 넘쳤다. 아녀자들도 소설을 읽으며 세상을 알아가고 북경으로부터 신문물이 들어왔다. 이때 원각사탑을 중심으로 한양의 인재들이 모여 백탑파를 형성했다. 박지원, 이덕무, 이서구, 서상수, 유득공, 홍대용, 백동수, 그리고 박제가까지. 조선의 변혁을 꿈꾼 그들은 신분과 연령의 벽을 넘어 우정을 나누고 학문을 논하고 음악을 즐겼다. 탑골에 부는 바람은 부드러운 실바람이 아니라 왕바람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런 정조의 죽음으로 그들의 꿈은 저만치 밀려나 버렸다.

▲ 원각사지 10층석탑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1467년(세조13년)에 세워졌다. 연산군 때 절은 없어지고 하얀빛을 뿜어내는 탑만 우뚝하니 남게 되었다. 고려의 경천사지 십층석탑을 그대로 본 따서 만든 것으로 조선시대 탑으로는 보기 드물게 우수한 작품이다. 그러나 유리벽 너머로 보는 용문이나 비천문은 멀고 감감하다. 사자는 포효할 힘을 잃었고 연꽃무늬도 생기가 없다. 부처와 보살에게 눈 맞춤을 할 수 없다. 언젠가 유리벽이 헐리는 날, 백탑파가 추구한 문학과 과학 그리고 경제가 통합하여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바뀔지 모른다.

거문고의 대가인 홍대용을 사모하는 젊은 여자가 나를 향해 오고 있다. 우리는 연령과 재능의 벽을 넘어 선지 오래다. 그녀의 등 뒤에 기타가 매달려 있다.

배혜숙 수필가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