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혁신·혁명·창조 남발

4차산업혁명 성공, 콘텐츠에 달려

수소경제의 ‘카고컬트’ 경계해야

▲ 정연우 UNIST 디자인·공학 융합 전문대학원 교수
‘4차산업혁명’ ‘제조업혁신’ ‘신경제창조’. 이런 키워드가 유행이다. 특히 연초라 더 극성이다. ‘혁명’ ‘혁신’ ‘창조’로 추출되는 단어들은 우리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목표를 실현하는 구호로 쓰이고 있다. 골치 아프다. 안그래도 하루하루 일도 힘들고 연구도 어렵고 프로젝트도 벅찬데 또 무슨 혁명이니 혁신이니 집어넣고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개선을 뛰어넘는 수준’일 때, 이를 ‘혁신’이라고 부르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수준’이면 ‘창조’라 말한다. 즉, 결과물을 평가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요즘은 거꾸로 아직 결과물이 없는 모호한 상태에 이같은 수식어를 써서 인위적 의미를 부여한다. 명확한 대상이 없는데, 혁명, 혁신이라 하고 창조라 한다. 그 뿐 아니라 그 모호한 구호로, 세상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빨리 동참하라, 살길을 찾아라, 미래를 찾으라고 난리법석이다. 아 정말 피곤하다.

그래서일까. 우리 주변은, 너도 나도 ‘혁명’ ‘혁신’이나 ‘창조’라는 ‘포장’을 자신의 업무나 연구, 제품, 상품에 덧씌우느라 바쁘다.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 나온 S사의 TV는 기존 모델보다 화질이 몇배 더 좋아졌다며 ‘혁신’ ‘혁명’이라는 수식어 남발로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혁신’이 아니라 ‘개선’이다. 화질을 더 선명하게 만든 TV는 스펙을 높이는 ‘기술적 개선’의 결과물이지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거나, 뛰어넘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구개발을 통해 차량엔진의 연비를 높이고, 컴퓨터의 처리속도를 빠르게 하고, 데이터통신 분량을 늘리는 ‘스펙 발전’은 기술적 개선이지 혁신이나 창조라 하기 어렵다. 다들 비슷하다. 새해 계획으로 목표성과를 높이고, 사고율을 낮추고, 생산량을 늘리고, 불량률을 줄이는 숫자를 기입하는 것은 아무리 유의미하다고 해도 현재 상황의 ‘점진적’ 개선이지 혁신이 아니다.

그럼 ‘혁신’은 무어란 말인가. 같은 CES에 나온 L사의 롤러블TV가 ‘혁신’이고 ‘창조’다. 평소에는 낮은 수납장 속에 두루마리처럼 말려 있다가 사용할 때 전동롤 스크린처럼 펼쳐 올라오는 기능 때문이다. 이 기능이 왜 혁신이냐 하면, 거의 백년동안 TV가 놓인 고정된 장소 ‘거실벽’을 드디어 떠나게 됨으로써, 거주공간의 구성개념을 송두리째 바꾸기 때문이다. 엘런머스크의 테슬라도 혁신이고 창조다. 험담꾼과 모종세력의 악의적 헐뜯음에도 아랑곳 없이 진전시킨 전기차 개발과 양산, 대량판매는 단순히 자동차의 엔진을 전기모터로만 바꾼 것이 아니라, 전세계 에너지 선택과 공급 인프라를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그가 먼저 제시하고 세계가 앞다투어 연구개발중인 ‘하이퍼루프’나 ‘고속이동 지하터널’도 시스템을 바꾸고 삶을 변화시키는 혁신이며 창조다.

‘4차산업혁명’ ‘수소경제’ 이런 것은 과연 혁신이고 창조일까? 반신반의다. ‘4차산업혁명’에서 먼저 제조업 혁신과 혁명은 맞다. 3D프린터와 신소재로 공장에서 개별사용자 요구대로 만들어주는 다품종소량생산체제가 가능해졌으니까. 하지만 진짜 혁신과 창조는 그것으로 무엇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우리 사회, 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단순히 만능하드웨어로의 교체는 콘텐츠의 혁신성, 창조성 여부에 따라 그냥 ‘4차산업개선’ 정도로 주저앉을 수 있다.

수소경제라는 거시적 플랜은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무한한 수소자원으로 풍요를 만드는 과정이 그대로 실현된다면 우리 삶은 에덴동산이 따로 없을 정도니까. 이것은 진정한 혁신, 혁명이자 창조다. 그러나 ‘실현가능성’과 우리 삶에 주는 ‘이익’의 존재여부에 따라, 구호만 가득한 망상일 수도 있다. 요란한 홍보 뒤에 숨은 수소에너지의 획득 효율, 인프라 구축과 사용시퀀스의 이익을 뜯어보면 실현가능성에 물음표를 달 수밖에 없다. 알버트비어만 현대차CTO가 신년사에서 언급한 ‘카고컬트(Cargo cult)’가 되지는 않을지. 오지랖 넓은 연구자로서 나라 앞날이 걱정이다.

혁신과 창조는 그럴듯한 포장이나 모호한 개념놀이가 아니다. 하드웨어만 갖춘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무엇을 하느냐’는 ‘콘텐츠’속에 들어 있다. 새해에는 모두가 제발 그 ‘무엇’을 생각하는 사람이 됐으면 한다. 정연우 UNIST 디자인·공학 융합 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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