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왕수 정치부 기자

전국 지방의원들에게 특권처럼 자리잡은 해외연수는 말 그대로 연수이지 ‘해외여행’이 아니다. 특정 목적을 가지고 해외로 나가 벤치마킹한 뒤 주민들의 삶의 질을 증진시키거나 지역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부분을 정책으로 추진하는게 주된 목적이다. 주민들이 낸 세금으로 이뤄지다보니 연수를 통해 보고 배운 것을 의원 개개인의 머릿속이 아닌 문서로 일정부분 내놔야 할 의무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진행된 연수를 보면 성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 여행의 이미지가 강하다보니 외유성으로 비춰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해외연수 무용론은 잊을만하면 다시 등장한다.

울산에서도 의원 해외연수에 대한 말들이 많다. 대표적인게 시의회 환경복지위원회가 지난해 실시한 싱가포르·말레이시아 해외연수다. 환복위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지난 2015년 내놓은 연구보고서 내용 중 일부를 그대로 해외연수 귀국보고서에 담아 논란을 빚었다.

더 큰 문제는 반성보다는 해외연수 참여자들이 각자 낸 귀국보고서를 환복위 전문위원실에서 취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작은 ‘실수’로 치부하는 것이다. 만약 대학생들이 자신들의 보고서를 베낀데 대해 법적조치를 취하게 된다면 울산시의회 뿐만 아니라 울산시민들은 얼마나 큰 창피함을 느끼게 될까.

부실 보고서는 비단 환복위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 이뤄진 의원 해외연수에서 ‘참고’라는 명목으로 다른 보고서 일부라도 베끼는 관행이 없었을까.

시의회가 그동한 실시한 해외연수를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알찬 보고서도 있지만 반대로 연수목적이나 연수자 현황, 연수국가 및 방문기관 소개 등으로 대부분 채워지고 의원 개개인이 보고 듣고 느낀 점이 담긴 부분은 일부분인 경우가 있다. 의원과 공무원을 포함해 많게는 10여명이 예산을 들여 실시한 해외연수 보고서치곤 초라한 것도 적지 않다.

의원 해외연수가 진행되는 과정도 문제다. 의원 해외연수라면 당연히 의원들이 직접 자료수집부터 사례조사까지 해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준비 과정 또한 연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해외연수는 공무원들이 사전준비를 하는 구조다. 물론 모든 의원들이 그렇진 않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의원들은 세금으로 관광만하고 돌아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최근 경북 예천군의원들의 해외연수 추태를 계기로 울산을 포함한 전국적으로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여론조사기관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국민 70% 이상이 의원 해외연수에 반대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예천군의원 사태를 일회성 ‘일탈’로 치부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도 전국적으로 의원 해외연수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너무 많이 쌓였기 때문이 아닐까.

무조건 의원 해외연수를 없애자는 말이 아니다. 세금으로 가는 만큼 알찬 연수를 진행해야 한다.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의원 스스로가 해외연수 주제를 정하고 방문기관이나 방문지를 찾아본 뒤 기관 방문을 요청하는 공문과 사전질문지를 작성하면 된다. 사전 답변을 받아 기관 방문시 추가 질의·응답을 하면 된다.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모두가 충분히 공부가 되고, 아는 만큼 보고 돌아와 정책 접목이 가능하다. 의원보다 많은 수의 공무원이 따라갈 하등의 이유도 없다. 공무원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의원들이 숟가락만 얹는 식의 해외연수 관행을 깨지 않는다면 특권처럼 자리잡은 해외연수를 의원 스스로 내려놔야 하지 않을까. 이왕수 정치부 기자 wslee@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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