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지난 20일은 24절기 중 스물네번째 절기인 대한(大寒)이었다. 24절기는 음력(陰曆)이 아니라 365일을 보름씩 쪼개어 표시한 양력(陽曆)이다. 일년을 보름씩 쪼개다보니 달의 주기와 거의 같아져 24절기를 음력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음력은 초승달에서 보름달까지 15일 단위로 반복되는 달의 주기를 따른다. 우리나라 속담 ‘달도 차면 기운다’는 역법의 원리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대한은 ‘큰 추위’라고 하지만 사실 그 전 절기인 소한(小寒)이 더 춥다.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소한의 얼음이 대한에 녹는다.’ ‘소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있어도 대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없다.’ ‘대한이 소한 집에 가 얼어 죽는다.’ 소한과 대한을 비교하는 속담들은 한결같이 대한이 소한보다 덜 춥다고 말하고 있다.

대한이 지나면 입춘이다. ‘대한(大寒) 끝에 양춘(陽春)이 있다’는 속담은 계절의 순환을 단적으로 표현한다. 올해는 2월4일이 입춘이고, 그 다음날이 설이다. 입춘은 양력의 24절기를 따른 것이고, 설은 음력을 앞세운 것이다. ‘입춘’이나 ‘설’이나 한 해의 시작이라는 의미에서 같은 것들이다.

대한에 ‘겨울을 낚는’ 진풍경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강원도 화천에서 꽁꽁 얼어붙은 강에 구멍을 내 낚시를 하는 ‘화천 산천어축제’가 열렸다. 5일 개막 이후 무려 140만명이 다녀갔다. 아침부터 월척의 꿈에 젖은 강태공들은 2만여개 얼음낚시 구멍에 낚싯대를 드리웠다. 기네스에 오른 산천어축제는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수십만명이 얼음판 위의 추위 속에서 오직 구멍만 응시하는 모습은 구도자를 연상케 한다. 추위는 역설적으로 뜨거운 정열을 품고 있다.

▲ 화천 산천어축제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느 뻘밭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 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봄’(이성부)

물극필반(物極必反), 모든 사물은 그 극에 도달하면 다시 원위치로 되돌아 온다는 뜻이다. 24절기의 끝 대한(大寒)에서 새해의 시작인 입춘(立春)으로 가는 반전 드라마는 강원도 화천의 산천어축제에도 내포돼 있다. 겨울을 낚는 반전 드라마는 이성부 시인의 말처럼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또 더디게 더디게 올 것이다. 달이 차면 기우는 원리 속에 마침내 꽃도 필 것이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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