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의혹의 몸통
증거인멸등 이유로 영장
법원 사법사유화 인정한셈
‘제왕적 구조’ 손질 불가피
사법개혁 논의 속도낼듯

▲ 지난 23일 서울 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밖으로 나서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연합뉴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최종 책임자로 지목된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이 검찰에 구속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전·현직을 통틀어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에 피의자로 소환된 데 이어 구치소에 구속수감되는 사법부 수장으로 기록됐다.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4일 오전 1시58분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검찰이 청구한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명 부장판사는 “범죄사실 중 상당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다”며 “현재까지 수사진행 경과와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추어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영장발부 사유를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9월부터 6년간 대법원장으로 일하면서 임종헌(60ㆍ구속기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박병대·고영한(64) 전 대법관 등에게 ‘재판거래’ 등 반헌법적 구상을 보고받고 승인하거나 직접 지시를 내린 혐의를 받는다.

◇양승태 구속사유 뜯어보니

법원이 24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은 그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정점’이었다는 판단이 배경에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곧 양 전 대법원장을 두고 ‘이 사태의 최종 결정권자이자 책임자’라고 한 검찰 주장을 법원이 사실상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통상 법원은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할 때 △범죄혐의의 소명 △범죄의 중대성 △증거인멸 우려 △도망의 염려를 주요 판단 기준으로 여긴다. 양 전 대법원장의 경우 도주 우려를 제외하고는 검찰이 ‘구속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사유를 사실상 모두 받아들인 셈이다.

검찰 안팎에선 양 전 대법원장이 후배 법관들의 진술에 대해 ‘거짓 진술’이라는 취지로 반박하거나 자신의 개입 근거가 되는 주요 증거자료에 대해 ‘사후조작 가능성’을 주장하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 점이 고려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사법부 수장을 지낸 그가 불구속 상태로 남은 수사와 재판을 받게 할 경우 후배 판사들과 말 맞추기 등 증거인멸을 시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법부 치욕’ 개혁동력 될까

‘사법농단’의 정점으로 꼽혀 온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4일 결국 구속되자 법원은 “70여년 사법부 사상 가장 치욕적인 일”이라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법조 3륜’으로 불리는 판사, 검사, 변호사 중에서도 최고의 엘리트로 자부해 온 법원이 국가의 ‘3부 요인’까지 지낸 전직 사법부 수장이 형사사건 피의자로 구치소에 수감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의’의 상징처럼 여겨져 온 사법부가 행정·입법 등 다른 권력과 이익을 주고받는 ‘재판거래’를 해왔다는 검찰 수사결과를 법원 스스로 상당 부분 인정하면서 사법개혁 논의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번 영장 발부를 두고 “대법원장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 현 사법체계가 언제든지 ‘사법의 사유화’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체제라는 점을 법원 스스로가 인정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소위 ‘제왕적’ 권한을 갖는 대법원장이 인사권 등 사법행정권 전반을 독점하면서 외부로부터의 사법부 독립은 물론 법원 내부의 재판독립까지도 쉽게 침해될 수 있다는 얘기다.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된 24일 오전 김명수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며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치소 입소…6㎡ 독방 배정

양 전 대법원장은 24일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첫 밤을 보냈다. 법무부와 교정당국 등에 따르면 서울구치소는 이날 오전 2시 무렵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직후 교도관을 통해 영장을 집행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전날 오후 4시 무렵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뒤 서울구치소로 이동해 이미 구치소에서 대기 중인 상태였다.

양 전 대법원장은 화장실을 포함해 6㎡(약 1.9평) 남짓 규모의 독방에 수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양 전 대법원장은 영장 집행 뒤 약간의 수면을 취했고, 아침 식사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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