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한글’이 탄생될 때에는 ‘훈민정음(訓民正音)’ 또는 ‘정음(正音)’ ‘언문(諺文)’ ‘반절’ ‘언서’ ‘언자’ ‘국문’ 등으로 불렸다. 이 중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던 명칭은 ‘언문’이었다. 15세기에도 ‘언문’이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하지만 ‘언문’은 중국 문자에 대해 주변 국가의 문자를 지칭하는 용어라 하여 회피하는 경향도 있었다. ‘언문’이 ‘국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갑오개혁’이후의 일이다. 대한제국(1894년 음력11월) 칙령 공문식 제14조 ‘법률 칙령은 모두 국문을 기본으로 하고 한문으로 번역을 붙이거나 혹은 국한문으로 혼용할 수 있다’를 발표한 바 있다.

이후 ‘한글’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는 주시경(1876~1914)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주시경은 1910년 ‘보중친목회보’에서 국어를 ‘한나라 말’, 국문을 ‘한나라 글’로 바꾸었다. 이로부터 ‘한말’ ‘한글’이란 말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글’이라는 단어가 공식적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1913년 3월23일 창립한 ‘배달말글몯음’(조선어학회)의 전말을 기록한 ‘한글모 죽보기’이다.

1921년 주시경의 제자들이 국어의 연구와 발전을 목적으로 창립한 민간학술단체인 조선어학회도 기관지 명칭을 ‘한글’로 해서 대한제국의 어문정책을 지향하고 있다. ‘하나의 글’ ‘유일한 글’ ‘큰 글’ ‘위대한 글’ ‘하나 뿐인 위대한 글’ 등의 의미인 ‘한글’이 만들어진 것이다. ‘훈민정음’이라는 오랜 전통을 가진 한자어 명칭을 고유어 명칭인 ‘한글’로 바꿔 놓은 것이다. 이 뜻을 이어받은 주시경의 제자들은 품사명을 표기할 때도 ‘동사’가 아니라 ‘움직씨’로 표현하였다.

주시경은 1908년 <국어문전음학>, 1910년 <국어문법>을 저술한 국어학자이다. 독립협회 소속으로 <독립신문>의 표기를 총괄했고, 이 때 한글정서법의 기초를 확립했다. 문자론과 표기법 분야, 소리와 문법론, 사전 편찬 분야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최근 영화로 재조명되고 있는 ‘말모이’ 편찬을 시작했으나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울산 출신의 국어학자 최현배를 키운 스승이기도 하다. 전 울산과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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