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호 울산시교육청 장학사

딸아이가 생일이라고 영화관람권을 보냈다. 덕분에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 일제강점기 팔도 사투리를 모아 공청회를 통해 표준어를 정하고 사전을 만들어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영화제목 ‘말모이’는 조선어학회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민초들의 말모이작전을 의미하면서, 주시경 선생이 완성하지 못하고 남긴 불완전한 조선말사전의 이름이기도 했다.

사전만 두고 봐도 세상은 참 변했다. 손때 묻고 닳고 무거운 사전을 책가방에 넣고 통학버스에 오르던 학창시절의 모습은 복고풍 사진의 한 장면이 되었다. 이제 손바닥 위 자그마한 기기를 만지작거리면 사전뿐 아니라 실시간 뉴스, 그림, 동영상 등 정보들이 미어터질 듯 주르르 튀어나온다. 나는 사전기능만 필요한데 스마트폰에서는 손가락을 꼬옥 눌리게 만드는 온갖 흥미위주의 기사들로 범벅되어 사이버공간에서 방향감각을 잃기 십상이다.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사람이 모이면 말이 모이고 말이 모이면 뜻이 모인다”고 극중 정환이 힘내서 말했다. “사람 없이 산다고 그렇게 막말하는거 아니야!”라고 판수가 울분섞인 말을 토했다.

영화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공청회라는 절차를 거쳐 공인된 조선말사전을 만들고자 했던 모습에서 민주주의의 절차를 엿볼 수 있다. 또 개인주의가 강세인 이 시대에 ‘한 사람의 열 발자국보다 열 네 놈의 한 발자국’이라며 우리라는 공동체의식도 휙 던져준다. 과거를 잊지 말고 우리말, 우리글을 사랑하자는 진중한 주제도 남긴다.

교육청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어서일까. 난 이 영화를 보면서 어떤 경우라도 아이의 자존감을 포기하게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의 시작은 판수와 정환이 오해를 해서 심하게 다투는 장면부터다. 정환에게서 상처를 주는 말 파편을 맞은 의리파이자 까막눈 판수는 그렇게 그들을 떠났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받은 것이다.

물론 영화는 갑윤이라는 어르신의 부드러운 타이름으로 다시 판수를 불러오게 하는 회복탄력성도 놓치지 않았다. 스스로 자존감을 포기하지 않은 판수에게 박수를 보냈다.

디지털 시대 우리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검색만 하면 유해, 무해한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어렵게 지켜낸 말과 글로 아이들이 디지털에 상처받고 베이지 않을까 우려된다.

아이들이 스스로를 존중할 줄 아는 자존감, 그 자존감을 잃은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결과는 어떠할까. 방탄소년단이 ‘love myself’를 외치는 것 또한 아이들의 자존감을 고취하려는 노력이 아닌가.

제주도 어느 작은 초등학교 교문 위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걸려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어떤 꽃은 봄에 피고 어떤 꽃은 여름에 피며, 어떤 꽃은 가을에 피고 어떤 꽃은 겨울 눈 속에서도 핍니다. 여러분은 언제가는 꼭 피어날 꽃입니다. 힘내세요. 사랑합니다.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교문 위 현수막 게시대에 아이들 모두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인성관련 글귀를 수시로 게시하는 것은 어떨까. 매일 등교하는 아이들이 그 글귀를 읽어가면서 나 자신의 소중함을 자연스레 습득할 수 있도록 말이다.

영화관을 나오자 미세먼지가 어느덧 사라지고 시야가 맑아졌다. 올해 울산학생기상대는 맑음이었으면 좋겠다. 고운 말을 모으고 뜻을 모아서 말이다. 말모이, 뜻모이, 울산맑음 말이다.

조현호 울산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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