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화반닫이이우덕作 (940×510×740㎜ 참죽나무)-

거실 한쪽에 반닫이가 놓여있다. 저고리와 치마에다 은밀한 속옷까지 갈무리해 놓고 있다. 깨끗한 수건으로 자주 닦다 보니 정이 들었다. 애초에 나비 장석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봄날이었나 보다. 반닫이를 닦고 있을 때 창문에 비친 햇살을 타고 나비 한 마리가 내 안으로 쑥 들어왔다. 아, 그때부터였던가 보다. 어느 장인의 솜씨인지 야무지게 다듬어 붙인 나비 장석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반닫이의 형태는 별스럽지 않고 비슷하다. 여기에 중요한 것은 재료와 문양이다. 장석(裝錫)의 쓰임새가 지방에 따라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단조로움을 없애려고 정교한 무늬를 새겨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평안도는 구멍이 숭숭 뚫린 장석을 붙여 숭숭이 반닫이라고 불렀고 고흥 지방에선 구름문양과 거멀 장석을 붙여 거멀 반닫이라 부른다. 밀양은 장석을 간소하게 붙이고 나뭇결을 살린 소박함이 특징이다. 내가 쓰는 반닫이는 백동 하얀 나비 장석이 화려하다.

오늘은 통영으로 길을 잡는다. 전통을 소중히 지키고 전수하는 유형문화재 장인이 빚어낸 나비 장석이 보고 싶어서다. 짧은 시간에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 지문이 지워진 거친 손으로 부드럽게 한 점 한 점 밑그림을 그린 후 새기고 베어내는 어려운 과정을 고집한다. 예술의 시간 속에서 숭고미와 우아미를 드러낸다. 하나의 걸작품이 태어나게 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썰물 속으로 밀려가듯 빠져들어 해가 지는 줄도 모른다. 반상의 고장으로 가는 내내 신명이 난다.

먼길을 달려 와 통영으로 들어선 차는 골목길을 돌아서 청마 선생의 생가 앞이다. 생가에 방문이 활짝 열려 있다. 반닫이가 눈을 마중한다. 남의 집을 함부로 기웃대는 것은 실례인 줄 알면서 성큼 들어선다. 살림살이를 보면 살아온 길이 보인다고 했던가. 살아온 세월에 곰삭음을 말해주듯 안주인은 집 안팎을 얼마나 야무지게 건사했던지 반짝이는 백동 장석에서 묻어난다. 흠집 하나 없이 정갈하다.

우리 선조들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보지 않고 세세하게 살피는 지혜가 있었다. 나비라는 미물을 가져와서 부부의 금실이란 고리에 단단하게 걸어놓고 긍정의 생각을 불어넣었다. 화려하게 펼친 날개가 여든여덟의 형태를 닮았다 하여 집안에 풍요로움과 다산을 염원했었다.

제아무리 육중하고 단단한 쇳덩이도 장인의 손을 거치면 새롭게 탄생한다. 가구에 장식물인 자물쇠와 자물통의 이름도 가지가지다. 맹꽁이 자물통, 복숭아 자물통, 나비면판 자물통들이 앙증맞아 언제 봐도 정감이 간다. 그러나 문을 여닫을 부분은 장석이 마무리한다. 연결 부분이 벌어지지 않도록 양쪽을 감싸주어야 할 보호막으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속품이다.

어머니는 물려받은 통영 반닫이를 귀중하게 여겼었다. 대청마루에 놓아두고 나비 장석에 빛이 흐려질까 수시로 점검해 보았다. 바쁜 와중에도 올이 고운 천에 왁스를 묻혀가며 윤이 나도록 수없이 문질렸다. 맨 아래쪽부터 두 무릎을 접고 앉아 닦은 다음 중간쯤은 무릎을 세운다. 마지막 위쪽은 허리를 반쯤 굽혀 닦았다. 틈 사이마다 몇 번이고 점검했었다. 그래도 의심스러워 돋보기를 들고 세밀하게 살펴보았다.

한 생을 닦고 아끼던 반닫이를 딸인 나에게 물려주었다. 어머니의 아픈 생이손가락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를 염려해 평안의 염원을 담아 보내주었다. 거실에 놓아두고 날며 들며 바라볼 때마다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좋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나는 그렇게 나비 날개가 빛을 잃지 않도록 고운 수건으로 자르르 윤이 나도록 정성스럽게 닦고 있다.

내가 반닫이 앞에만 가도 애착하는 마음이 엿보이는지 남편은 자리를 옮겨 앉으며 허구한 날 문질러 닳아 없어지겠다며 능청맞게 너스레를 떤다. 식구들이 뭐라 하던 내 마음이 헐거워질 때마다 무릎걸음으로 닦다가 반닫이와 눈맞춤을 한다. 더 조이고 싶어서다. 부부는 서로가 장석처럼 마음을 활짝 열어 두기도 하고 때로는 여물게 단속해야 덜컹거리지 않는다.

청마 선생 생가에서 안방에 들여놓은 반닫이에 반짝반짝 빛나는 나비를 가슴에 담아왔다. 안주인의 알뜰살뜰함이 엿보인다. 야무지게 안팎 연결고리에 걸어온 한 생을 보는 것 같다. 가만히 바라보다 고운 천으로 장석을 은은히 빛나도록 닦는다. 내 삶도 날개를 활짝 펴고 사뿐 내려앉은 나비처럼 고요하면 좋겠다.

▲ 김정수씨

■김정수씨는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당선
·울산시조 작품상
·시조문학 작가상
·시조집 <서어나문 와불> <거미의 시간>
·울산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 이우덕씨

■이우덕씨는
·개인전 2회·예목공방 운영
·인사동 하나로갤러리 서각창립전(2012)
·울산지역작가 초대전(현대예술관)(2017)
·울산미술대전 공예대상 특·입선
·대한민국신미술대전 우수·특선·입선
·울산미술협회·울산공예디자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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