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눈 내리고 내려 쌓여 소백산자락 덮어도/ 매화 한송이 그 속에서 핀다// 나뭇가지 얼고 또 얼어/ 외로움으로 반질반질해져도/ 꽃봉오리 솟는다// 어이하랴 덮어버릴 수 없는/ 꽃 같은 그대 그리움// 그대 만날 수 있는 날 아득히 멀고/ 폭설은 퍼붓는데// 숨길 수 없는 숨길 수 없는/ 가슴 속 홍매화 한 송이……‘홍매화’ 전문(도종환)

통도사 홍매가 점점 붉은색을 더하더니 마침내 만개에 가까워졌다. 통도사 홍매는 봄을 알리는 전령사다. 주말마다 사람들은 통도사 일주문을 통과하기도 전에 마음 속의 홍매를 이미 피운다.

자장매(慈臟梅)로 불리는 이 매화나무는 크진 않지만 나이가 350살이나 된다. 임진왜란으로 통도사 건물 대부분이 타버린 현장에 어느날 매실나무 싹이 나와 이윽고 꽃을 피웠다. 절 사람들은 창건주인 자장율사의 정신이 깃들었다고 자장매(慈臟梅)라고 불렀다. 구부러지고 옹이진 이 매화나무는 겨울 한 철 죽은 듯 서 있다가 입춘 무렵이면 영락 없이 꽃을 피운다.

그래서일까. 자장매가 자리한 곳은 바로 영각(影閣) 앞이다. 영각이란 사찰에 머물면서 수행한 고승들의 영정이나 위패를 모신 전각을 말한다. 옹이지고 구부러진 나무에 핀 이 홍매는 그래서 해탈의 꽃이요, 열반의 꽃이다.

▲ 필자의 마당에서 11일 꽃 피운 홍매화.
 

봄은 통도사 뒷산 영축산 기슭에 어슬렁거리다가 영남알프스 등어리를 타고 신불산, 간월산에서 등억리 필자의 마당으로 내려온다. 홍류폭포의 무지개 빛 물소리가 간월산 계곡을 흔들면 봄은 이윽고 필자 마당의 홍매나무 가지에 붉은 꽃눈을 내려앉힌다. 오늘 문득 돌아보니 기어이 두 송이 피워내고야 말았다. 채 녹지 않은 신불산 칼바위 잔설 속에서도, 등억마을 화천(花川, 일명 작괘천)의 두꺼운 얼음장 속에서도 봄 기운은 오늘 아침 홍매 두 송이를 끝내 떨쳐 피우고 말았다.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봄날’ 전문(김용택)

조선중기 문필가 신흠은 이렇게 노래했다. 오동나무는 천년이 지나도 항상 그 곡조를 간직하고(桐千年老 恒藏曲),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 不賣香)고 했다. 이황은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저 매화나무에 물을 주어라’는 유언을 남겼다. 천원짜리 퇴계초상 왼쪽에는 만개한 매화가 유언처럼 그려져 있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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