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신념과 추진으로 11년동안 영국을 이끌었던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78)가 다우닝가 10번지(총리 집무실)를 떠난지 13년만에 심신이 한없이 허약한 외롭고 초란한 노인으로 변모했다고 최근 더 타임스가 보도했다.

 대처 여사는 특히 지난 50년동안 인생의 동반자였던 남편 데니스 대처 경이 한달여 전에 숨진 이래 극도의 고독과 무력감 속에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큐멘터리 TV프로그램을 제작했던 린다 맥두걸 프로듀서는 "대처 여사는 노년을 함께 할 친구가 거의 없을 정도로 버려진 채 잊혀진 인물이 됐다"며 "너무나 변한 모습에 눈물이 날 지경"이라고 말해 권력무상을 느끼게 할 만한 한 대목이었다.

 나라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했지만 대처 여사가 지난해 77세 생일날 받은 축하 카드는 단 4장에 불과했다. 맥두걸은 "총리시절 하루도 신문에 그의 이름이 나지 않는 날이 없었고 심지어 "대처리즘" 이란 말이 생겨날 정도였지만 한 여인으로서 대처 여사는 완전히 버림받았다"고 말했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이며, 이 세월은 우리에게 많은 지식과 교훈을 주기도 한다. 권력 또한 세월과 다를 바 없는 것인 듯하다.

 권력의 절정에 올랐던 나폴레옹이 그의 어머니 앞에서 자랑했다. "나는 지금 황제입니다. 유럽의 절반은 내 법에 따르고 있고 우리 형제는 국왕이며, 자매는 왕비가 되었습니다"라고. 그러나 어머니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그것이 얼마나 오래 가겠니"." 나폴레옹 보다는 그 어머니가 인생과 세월을 내다보는 눈이 한결 깊었던 것 같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김대중(DJ) 정권시절 "소통령"이라는 별칭을 들으며 국정을 장악했던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두달전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 구치소에 수감되기전에 심경을 묻는 기자들에게 권력무상의 소회를 담은 한 마디였다. 조지훈의 시 "낙화"의 첫 마디인 이 구절은 당시 세인들의 입에서 회자됐다. 박씨는 이어 "꽃잎이 진다고 해서 바람을 탓하지 않겠다. 다만 한잎 차에 띄워 마시면서 살겠다"고 말한 뒤 구치소로 향했`다. 그의 뒷모습은 "잘 나가던 시절"에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DJ정권시절 "밤의 대통령" 소리까지 들을 정도의 권력 실세였던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현대비자금의 덫에 걸려 그저께 검찰에 긴급 체포됐다. 이전 두 번의 구속 때와 다른 정치역학을 감안할 때 "정치적 사망선고"와 다름 없는 것이다. 과거와 달라진 정치 환경을 고려해 볼 때 그의 부활은 사실상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치사에서 "측근 정치"의 대명사로 통하던 권씨는 DJ의 고향 후배이자 목포상고의 후배로 71년 신민당 대통령후보 민정담당 보좌역, 87년 평민당 총재 비서실장, 96년 총재 비서실장 등을 역임하며 김 전 대통령의 "40년 그림자" 역할을 해오면서 영욕을 함께 했다.

 그러던 그가 지난 97년 대통령 선거 때는 한보사건으로 구속돼 있어 직접적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를 견제하려는 동교동 신파 및 신진 소장그룹이 등장하면서 한풀 꺾이는 듯했으나 99년 11월 민주당 상임고문이 되면서 그는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재개, 4·13 총선 때는 정치자금 조달 및 공천 등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역시 권노갑"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는 낙천자들을 정부산하단체에 배려하는 역할까지 맡았다. 여권 내에서는 "권 전 고문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고 할 정도였다. 이런 그가 검찰의 긴급체포로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됐다. 오늘의 그를 보며 "권력 무상"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한다. jhshin@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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