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희 울산시 중구 유곡동

봄이 오나 보다. 여기저기 봄꽃 소식들이 올라온다. 봄소식을 제일 먼저 전하는 이는 생강나무, 산수유, 동백, 히어리, 영춘화, 붓순나무, 풍년화 등의 나무들이 있고, 복수초(福壽草·얼음새꽃), 바람꽃, 노루귀 등의 풀꽃들이 있다.

나무의 꽃이야 사진 찍느라 훼손할 일이 드물지만, 설령 꽃이 훼손되어도 나무가 죽진 않지만, 풀꽃은 얘기가 다르다. 그 중 복수초는 낙엽 쌓인 무채색의 겨울숲에 찬란한 황금색으로 겨울을 깨운다. 두터운 겨울을 뚫고 비집고 올라오는 모습은 찬란한 황금 술잔을 연상시킨다.

바람꽃은 또 어떤가…. 가느다란 줄기끝에 매화 닮은 작은 꽃이 핀다. 세(가는)적삼마냥 얇고 새하얀 꽃잎은 하늘 하늘 선녀옷이 떠오르지만 그 가녀림으로 어찌 얼지 않고 그 무시무시한 동장군을 이겼나 싶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카페나 동호회가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야생화 군락지는 이른바 야생화를 사랑한다는 사람들에게 짓밟힌다. 성질 급한 사람이 먼저 보고 소식 올리면 너도 나도 달려와 아직 낙엽속에 숨어있는 개체들을 파헤쳐 찍고 카페에, 밴드에 자랑하느라 바쁘다.

누가 찍던 별다른 것이 없는 조건인데 특별하기 위해서 인위적인 세팅을 한다. 꽃을 꺾어 원하는 배경에 갖다 놓기도 하고, 설중화를 찍기 위해 아이스박스에 냉동고 서리까지 긁어와 연출을 하고, 살리지도 못할거면서 뭉텅뭉텅 캐어 가기도 한다.

낙엽 이불을 홀라당 다 걷어내어 채 가시지 않은 동장군에 얼어버리게 하는 건 예사이고, 보기 좋은 모델은 나만 찍고 꺾어버리는게 불문율이라니 참 슬퍼진다.

더 큰 문제는 이 모든 작업을 하느라 아직 올라오지 못한 개체들은 사진가들의 발길에 전부 짓밟힌다는 것이다. 이르게 피워 올린 소수 몇 개체 이외엔 모두 밟히다보니 속된 말로 일등만 알아주는 서식지는 해가 갈수록 급격히 줄어들고 파괴되어 간다.

울산에도 멀지 않은 곳에 복수초, 변산 바람꽃, 노루귀 등의 자생지가 제법 있다. 아니 있었다. 이제는 찾아보기도 힘들고 있어도 몇 개체도 안 된다한다. 야산에 나름 숨겨진 곳인데 파헤치고 훼손하는 것은 일반인이 아니고, 이른바 식물을 사랑한다는 사진가모임이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6, 7년 전 쯤 나 또한 열심히 다니던 때가 있었다. 아무리 까치발을 하고 조심히 다녀도 발밑에 밟히지 않을 수가 없고 해마다 급격히 줄어드는 자생지를 보니 더이상 갈수가 없었다.

봄꽃들이 보고플 때는 지난 사진들을 들춰보거나 식물원에 가서 편히 즐긴다. 진정한 야사사인(야생화를사랑하는사람들)이라면 이제 그 발길을 멈추고 어떻게하면 자생지를 보호하고 복원할 것인가를 연구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울타리를 쳐서 포토라인을 만들고, 이미 훼손된 지역엔 휴식기를 두고 출입을 막아야한다. 해마다 여기저기 사진 찍으러 다닐 것이 아니고 어설픈 사진작가들의 발길을 막아서야 할 것이다. 야생화가 아름다운 것은 자연 속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숲의 나무들에 새 순이 트고, 초록잎으로 살다가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순환의 고리, 그 나뭇잎 한 장 떨어진 그 자리도 다 이유가 있고, 그 밑에 숨죽여 피어오를 날만 기다리는 봄꽃들이 있다.

함부로 걷어 내거나 보이지 않는다고 밟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자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짓도 안 하는 것, 자연을 그대로 놔두는 것, 그것이 최선이다.

이상희 울산시 중구 유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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